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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Apr 11. 2021

이스털린의 역설: 경제 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



«팩트풀니스»에서 한스 로슬링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실제보다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  하나로, 사람들이 긍정적 변화를 금방 잊는다는 사실을 지목한다. 경제가 성장해도 사람들의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는 이유에 대한 이스털린의 설명을 들으면, 확실히 그런  .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이스털린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소득이 아니라 상대소득이라는 입장 가지고 . , 소득의 절대적인 크기보다도,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사회적 기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가 행복을 결정하는 인자라는 의미. 따라서 주어진  시점에서는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자기의 소득 수준을 사회의 평균적인 수준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늠하게 되면서, 사회의 평균에 비해 훨씬 높은 소득을 버는 사람은 만족감을 크게 느끼게 되고,  반대로 사회적 평균보다  버는 사람은 준거 집단에 비해 한참  미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되면서, 주어진  시점에서  국가 안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소득과 행복  (+)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 하지만, 경제 성장을 통해 모두가  함께 소득이 올라  상대적인 위치에는  변화가 없다면, 소득을 과거에 비해  벌게 되어도  행복해지지는  게다.



이런 소득의 비교는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득 수준의 상대적인 차이에서 이뤄질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과거 자신의 소득과 현재의 소득 사이에도 이뤄진다고   . 특히, 불황기에는 경제 상황이 과거에 비해 나빠짐에 따라 삶에 대한 만족도도 같은 방향으로 변하기 때문에, GDP 변화와 행복 변화 사이에 시계열적 관계가 성립할  . 그래서, 아래 그래프처럼 단기적으로는 GDP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 이스털린의 이론에 비춰봐도 이상하지 . 아래 그래프는 이스털린의 이론에 입각해 소득(income) 행복(happiness) 장단기에 걸쳐 어떤 추세를 그리며 변화하는지를 도식화해 보여준다.  장기적 추이를 그리고 있는  추세선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지만, 회색 수직선들을 기준으로 구간을 나누어 보면,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있다.



그림1. 소득과 행복의 장단기 추세



하지만 이걸 경제 성장의 효과,  사람들이 누리는 절대적인 부의 크기에 의해 나타나는 효과와 혼동하면 곤란하다. 단기적으로 불황에 따라 행복도가 감소하고 이후 호황기에 종전의 소비 수준을 회복하며 행복도가 다시 증가한다고 해도, 이건 과거의  처지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이동한 위치에 의해 나타나는 차이일 뿐이기 때문. 애초 이스털린의 이론은, 개인의 소득이 증가하면 욕구 수준도 따라 증가해 변화한 소득수준에 적응하여, 행복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Easterlin 2001). 이런 그의 이론처럼,  그래프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



고로 GDP 행복 사이의 관계가 소득의 절대적인 크기 변화에 의해 나타난다는  증명하려면,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완료되었을 때의 누적 연평균 성장률 역시  기간의 행복의 변화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보여줘야 한다. , 단기가 아닌 장기에 걸쳐서도 GDP 행복 사이에 시계열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보여줘야 '이스털린의 역설' 반증  . 반면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연구는 그런 장기적 관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스털린의 반론이다(Easterlin & Angelescu, 2009; Easterlin, Mcvey, Switek, Swangfa & Zweig, 2010).



비슷한 맥락에서, 서베이 데이터가 커버하고 있는 기간 동안 사회체제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붕괴했었던 경제를 회복하는 중이었던  공산권 국가들을 따로 고려해야  필요 있다고도 이스털린은 지적한다.  공산권 국가들은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 경제가 크게 후퇴했고, 이를 회복하는 데에 통상 경기의  싸이클이 완료되는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걸리기도 . 아래 그림2처럼, U자를 그리며 경기가 바닥을 쳤다가 원점을 회복하는 데에 길게는 18년씩이나 걸리기도 . 하지만, 많은  공산권 국가들에서 행복 데이터가 수집되기 시작한  90년대이며, 80년대 이전부터 자료가 있는 나라들은  없었. 때문에, 이들 국가를 데이터셋에 포함하면 GDP 행복의 단기적 변화가  장기적 관계를 오염시킬  있다는  이스털린의 논지. 90년대에 저점을 찍기 이전 경기의 고점 때부터, 다시 고점을 회복할 때까지의 전체 사이클을 모두 포함하는 시계열이 있다면, 경제 성장과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있을 테지만, 전체 사이클의 일부만 있다면 행복지수가 경기의 사이클을 따라 감소, 증가하는 단기적 관계를 장기적 관계와 혼동할  있다 .



그림2. 구 공산권 국가들의 1인당 GDP 추이



스티븐슨과 울퍼스는 이스털린의 이런 반박에 응해, 다니엘 삭스(Daniel Sacks) 함께 참여한 2010년의 논문에서, 장기적으로도 GDP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공산권 국가들이 아닌 나라들에서도 이같은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Sacks, Stevenson & Wolfers, 2010). 이들의 세계가치조사(WVS) 데이터 분석에서는, 시계열이 평균 11 정도일 때도 GDP 변화와 행복의 변화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나타났.



삭스 등의 연구가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비판이었다면, 갤럽 월드 (Gallup World Poll; GWP) 자료를 사용해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비판에 나선 에드 디너(Ed Diener)  동료들의 연구 심리학자들의 비판이다(Diener, Tay & Oishi, 2013). 이들에 따르면, 가계의 소득 변화는 행복의 변화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 있었. 이들은 상대소득보다는 절대소득이  중요한 인자였다고도 주장하며, 동시에, 저자들이 분석한 6 정도의 기간에서는 GDP 가계 소득 변화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스털린이 소득과 행복  시계열적 관계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소득 변화의 지표로서 GDP 사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을 시사 .



사회학자인 빈호벤(Ruut Veenhoven) 역시 행복에 관한 연구들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는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World Database of Happiness) 자료 활용해 최소 10년의 시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보다 방대한 데이터셋으로도 GDP 성장과 행복의 변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반박에 선다(Veenhoven & Vergunst, 2014). 빈호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행복이 증가할 확률이  높았으며, 40 이상의 시계열을 형성하는 데이터셋으로도 연평균 GDP 변화율과 행복 변화율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








이스털린은 삭스 등의 재반박이 역시 단기와 장기를 제대로 분별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지적(Easterlin 2015, Easterlin 2016). 그들이 사용한 주요한 데이터인 WVS 분석은 비록 시계열이 평균 11년이지만, 실은 대략 절반 정도의 나라들이 10년보다 짧은 시계열을 갖고 있었으며 시계열이 3년에서 7 정도로 짧은 나라들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라는 . 유로바로미터 자료의 분석에서는 GDP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검증할  있었을 10 이상의 시계열을 10 단위로 끊어 분석함으로써 단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그쳤다고 반박한다. 무엇보다, WVS 데이터는 삭스 등의 연구가 이뤄지던 시점에 이미 5 조사 자료 역시 사용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4 조사까지의 데이터만 이용한 까닭을 이해할  없다고도 이스털린은 지적한다. 이스털린이 직접 5 조사를 포함해 6차의 자료까지 사용해 분석한 결과, 오히려 GDP 행복 사이에는 장기적인 시계열적 관계가 없었다는 이스털린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에드 디너 등의 연구 대해서는, 길어야 6-7 정도의 짧은 기간의 관계를 보여줄 뿐으로 역시 이스털린이 강조하는 장기적 관계를 검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지적. 예를 들어 가장 최근 논문에서 이스털린은 WVS 자료를 이용해서는 국가별로 평균 28년의 시계열을, 디너 등이 연구에서 사용한 GWP 자료로는 평균 14년의 시계열적 관계를 분석했는데(Easterlin & O'Connor, 2020), 그에 비해 6년은 너무 다는 .



빈호벤의 연구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GDP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WVS, Gallup  여러 조사들을 함께 분석하고 있어, 서로 다른 자료들을 함께 분석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과연 적절했는지 이스털린은 의문을 긴다(Easterlin 2016). 예를 들어, WVS '행복(happiness)' 데이터에는 조사 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사실을 지적한다. 2 조사에서는 응답자에게 제시된 "매우 행복함(very happy)"부터 "전혀 행복하지 않음(not at all happy)"까지의 선택지들의 순서가 응답자가 바뀔 때마다 바뀌도록 했었는데, 3 조사부터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단 . 사회조사에서는 '초두효과'라고 하여, 응답자들이 먼저 제시되는 선택지를  많이 선택하는 현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데, 3 조사 이후에는 모든 응답자들에게 "매우 행복함(very happy)" 먼저 제시하였으므로, 이런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보면 실제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에 변화가 없더라도 마치 행복감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스털린에 의하면 빈호벤의 데이터셋에서 21~40년의 시계열을 가진 국가들의 1/4 정도, 10~20년의 시계열을 가진 나라들의 1/5 정도가 이렇게 왜곡될  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



같은 연구의 40 이상의 데이터셋에도 마찬가지의 상향 편의가 발생할  있다고 이스털린은 지적한다. 이른바 '캔트릴 사다리'라고 해서, 사다리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가장 높은 단계까지 , 본인의 삶이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지를 응답자가 고르도록 하는 문항이 있었는데, 과거 해당 문항을 사용한 서베이에서는 응답자들이 응답 직전 조사자와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가장 나쁜" 상태를 묘사하라는 지시에 응했었다는 . 따라서, 해당 조사에서는 부정적인 프레임에 노출된 응답자들이  만족도를 보다 낮은 상태로 보고했을 가능성이 . 반면 최근의 조사에서는 그런 우려가 없으므로,  문항에 대한 응답들은 역시 추세적으로 상향 편의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 이스털린은 빈호벤의 데이터에서 40 이상의 시계열을 가진 18 국가들  11 국가가 이런 오염의 우려가 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털린이 지적한  하나의 오류는, 빈호벤이 GDP 장기적 추이를 연구하면서, 고정 달러(constant dollar) 계산한 GDP 아닌,  시점의 현재 달러(current dollar) 계산한 GDP 분석에 사용했다는 . 같은 값의 화폐라고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질 가치는 변동하기 때문에 이런 연구에서는 기준년도로 가격을 고정하여 서로 다른 시점  비교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처리가 필요한데, 빈호벤은 그냥 현재 달러를 분석에 사용하는 실수 저지른 .



코로나 판데믹이 세계를 덮치기 직전까지 수행된 가장 최근의 WVS EVS(European Values Survey), GWP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이스털린은 다시,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이  높은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준다(Easterlin & O'Connor, 2020). 애초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논문에서 분석한 것보다도 많은 수의 나라들을 분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GDP 행복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 레이아드의 가설대로 GDP 수준이 낮을 때에만 GDP 증가가 행복을 증가시키는 관계도 없었. , 소득이 낮은 국가들에서도 장기적으로는 GDP 성장이 행복을 증가시키지 않았.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단연 중국. 인류의 행복이 근대 자본주의의 출현과 더불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는 정확히  길이 없지만, 실제 역사에 가장 근접한 가늠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례가 있다면, 역시 중국일 테다. 과거 산업자본주의가 서구 문명에 선물했던 것과 같은 근대적 경제 성장을, ‘행복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한 최근 몇십  동안 가장 압축적으로 겪은 나라가 바로 중국이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가치조사(WVS) 처음 참여한 1990년부터 2017년까지, 1인당 GDP 4 이상 증가하는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 경제사학자들이 널리 사용하는 역사 통계인 메디슨 데이터베이스(Maddison Project Database, version 2020) 따르면, 1990 시점의 중국의 1인당 GDP 2011 달러로 $2,982, 산업혁명기에  진입하는 1760 영국의 그것($2,915) 비슷한 수준이다(Wu, 2014; Broadberry et al. 2015). 역시 같은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경제가 중국의 2017 1인당 GDP $12,734 처음 능가하게 되는  1950년대. 따라서,  27 동안의 중국의 경제 성장은, 과거 서구 문명이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로 진입하고  한복판을 지나며 겪었던 성장과 양적으로 맞먹는 수준이었던 . 놀라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민들의 행복은 1990년에 비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사실이다. 오히려  기간에 중국인들의 행복은 다소 감소했다가 2000년대 이후 다시 증가해 최근에야 애초의 수준을 회복하는 U 궤적을 보여준다(그림3). 이스털린에 따르면, 세계가치총조사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행복에 관한 다른 조사 자료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Easterlin, Morgan, Switek & Wang, 2012).



그림3. 중국의 행복지수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 실은 이스털린의 역설과는 다르다는 것도 이젠 확실히   있다.   "기본 욕구" 충족되기  "일정 수준" 미만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행복도 증가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스털린의 역설을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중국의 사례에서는 그런 현상을   없었기 때문. 세계은행은 최소한의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극단적 빈곤을, 저소득 국가의 빈곤선으로부터 산정한 ‘하루 $1.9’ 국제 빈곤선을 기준으로 정의  . 지난 글에서 이미 지적했듯, 지난 20  동안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국제 빈곤선 기준의 극빈 상태에서 탈출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의 $1.9 미만 ‘극단적 빈곤 율은 1990 66.3%에서 2016 0.5% 감소했.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행복은 증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의 행복이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오히려 감소하고 2000년대 이후에야 다시 1990 즈음의 수준을 회복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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