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은, 과연 얼마만큼이나 GDP에 의해 설명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들을 톺아볼 때 ‘프레스턴 커브’를 언급하지 않기는 어렵다. 프레스턴은 20세기 기대수명 증가의 동인을 한 국가의 경제 성장과 그 밖의 요인으로 분해하는 간단한 모델을 통해, 193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의 기대수명 증가의 84% 가량이 국민소득 증가가 아닌 다른 동인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Preston, 1975). 어떻게 프레스턴이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논리를 따라가보자.
프레스턴은 193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국가별 1인당 국민소득과 평균 기대수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회귀선(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의 함수적 관계를 나타내는 선)이 좌표평면 상에서 위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이는 같은 소득 수준에서 누리는 기대수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했다는 의미다. 이렇게 국가별 국민소득과 기대수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프레스턴의 이름을 따 '프레스턴 커브'라고 하는데, 그가 1975년 논문에서 처음으로 프레스턴 커브를 그릴 당시에는 1900년대의 1인당 국민소득과 기대수명에 대한 자료를 모두 갖춘 나라가 10개 정도였을 뿐으로, 표본크기가 너무 작아 통계적 분석이 불가능했지만, 학자들의 연구가 누적되어 보다 풍부한 데이터들에 접근이 가능해진 지금 시점에서는 1900년대에 대해서도 프레스턴이 한 것과 똑같은 분석을 해볼 수 있다.
경제사학자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역사통계인 Maddison Project Database의 2020년 자료와 Our World in Data가 정리한 기대수명 자료를 바탕으로 1900년 즈음의 시점부터 2018년까지 약 30년 단위로 그린 프레스턴 커브를 한 평면에 나타낸 것이 아래의 ‘그림1’이다(자료가 비교적 부족한 1900년과 1930년의 데이터셋은 각각 1900년, 1930년을 기준으로 +-5년 이내의 값 중 기준 연도에 가장 가까운 연도의 자료를 사용해 구성했다).
x축은 1인당 GDP를, y축은 평균 기대수명을 나타낸다. 이렇게 그린 프레스턴 커브를 통해 각각의 주어진 한 시점에는 GDP와 기대수명 사이에 정(+)의 관계가 성립하며, 또한 커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위로 이동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그림2는 똑같은 그래프의 x축을 로그 단위로 표시한 그래프다.
그럼 프레스턴은 어떻게 수명의 증가에서 경제 성장만으로 인한 증가를 따로 떼어 볼 수 있었을까? 그림3은 프레스턴의 논리를 도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1930년에서 1960년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1인당 GDP가 $2,500에서 $7,500로 증가한 지역이 있다면, 아래 좌표평면에서 이 지역의 위치는 점A에서 점B로 이동했을 것이다. 동시에 점A와 점B 사이의 낙차인 a'+b'만큼 기대수명이 증가했을 테다. 그런데, 그래프의 이동이 없었더라도, 1인당 GDP가 2,500달러에서 7,500달러로 증가하면, 1930년대의 GDP와 수명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빨간 회귀선 상의 이동으로 인해 a'만큼의 수명이 증가했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a'는 그래프를 이동시키는 다른 어떤 요인의 변화가 없을 때의 경제 성장만으로 인한 수명 증가분이다. 반면, 나머지 b'은 경제 성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래프 자체의 이동으로 인한 증가다. 즉, 똑같은 1인당 GDP 수준에서 각각 1930년대와 1960년대에 누릴 수명의 차이에 해당하는 증가분이다.
아래 그림4와 같이 분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GDP는 점A에서 조금도 증가하지 않았더라도, 그래프의 이동으로 인해 b''만큼 기대수명은 증가했을 것이다. 그 나머지 a''는 a'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한 그래프 상에서 x의 변화로 인한 y의 증가분이라는 점에서, 경제 성장에 기인한 수명 증가분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프 상의 모든 점은 기울기가 다소 다르기 때문에, a'와 a'', b'와 b''의 값에는 각각 다소간의 차이가 생기는데, 그 평균이 대략 경제 성장으로 인한 증가 “(a'+a'')/2”와 그 나머지 외생적 요인으로 인한 증가”(b'+b'')/2”에 각각 해당한다. 프레스턴이 각 지역별로 이런 계산을 수행한 후, 인구수로 가중치를 주어 합한 결과, (2.5+1.3)/2=1.9년 만큼이 국민 소득의 성장으로 인한 증가분이었고, (10.9+9.7)/2=10.3년 만큼이 그 나머지로 인한 증가분이었다. 즉 12.2년 중 84% 가까이가 경제 성장으로 인한 증가분이 아닌 그 나머지 잔차에 해당했다(Preston,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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