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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Mar 24. 2019

어린이집과 그놈의 죄책감

[엄마발달백과-어린이집편③] 엄마도 아이도 성장하는 시간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안녕하세요. 마더티브 에디터 홍입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 건 생후 10개월쯤이었어요. 아이 돌이 6월, 복직이 9월. 원래는 돌 지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었죠. 그런데 더 빨리 어린이집에 보낸 이유는 단 하나. 제가 살기 위해서였어요.
 
10개월이 되면서 육아는 다른 차원으로 어려워졌어요. 아이는 호기심과 에너지가 대폭발했고 계속해서 누군가 관심 가져주기를 바랐어요. 기고, 짚고 서고, 넘어지고.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어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려워졌을 때, 저는 진심으로 절망했어요. 먹고 자는 것에 이어 싸는 권리까지 박탈당하다니. 인권이 사라진 느낌이었죠.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아이에게서 벗어나 저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숨구멍이 간절했어요.


나 살겠다고 저 어린 걸


“그래도 돌은 지나서 보내야지.”
“말도 못하는 애를 어린이집 보낸다고?”
“어휴, 그 어린 것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어요. 물론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어린이집을 대신해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 말들은 고스란히 저와 남편에게 상처가 됐어요.
 

처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어요(출처 : pexels)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나 살겠다고 말도 못하는 어린애를 벌써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맞을까. 그때도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이집과 관련된 부정적인 뉴스가 나왔어요.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 머릿속에는 온갖 최악의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그려졌어요. 면담할 때 본 가정형 어린이집은 상상 이상으로 좁았고 교사들은 지쳐 보였어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애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 입학 직전까지도 등원을 취소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다행히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어요. 낯을 안 가리는 시기였고 새로운 놀잇감, 새로운 사람들을 좋아했어요. 헤어질 때 울지 않고 엄마아빠와 떨어져 신나게 잘 놀았어요. 그래도 온전히 어린이집 다닐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아직 면역력이 약한 아이는 자주 아팠어요. 감기에 계속 걸렸다 나았다를 반복했어요. 늘 콧물을 달고 살았어요.
 
어린이집에 안정적으로 적응했다 싶었을 때쯤, 아이는 수족구에 걸렸어요. 처음으로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아이를 보며 저는 또 죄책감을 느꼈어요. ‘어린이집에 괜히 보내서...’ 나 때문에 아이를 고생시킨 것 같았죠. 아이는 보름 가까이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어요. 다시 24시간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반복하면서 저는 깨달았어요. 제게는 어린이집이 꼭 필요하다는 걸요.  


"애는 엄마가 봐야지"라는 말


아이를 온종일 계속 돌보는 건 너무 힘들었어요(출처 : pexels)


아이를 온종일 계속 돌보는 건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마음은 자꾸만 다른 곳을 떠돌았어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고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쉬었어요. 의문이 들었어요. ‘이렇게 질 낮은 시간을 보내도 과연 엄마가 애를 보는 게 최선일까.’
 
육아를 유난히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언젠가 친정엄마는 말했어요. 예전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았으니 아이를 봐줄 손도 많았고, 골목에서 애들이 다 같이 컸으니 아이를 혼자 키우지 않아도 됐다고요. 그런데 요즘 엄마들에게는 대가족도, 이웃도 없으니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해서 너무 힘들다고요. 게다가 요즘 엄마들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훨씬 크잖아요. 저도 그런 엄마였고요.
 
단 30분. 처음 아이를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순간을 기억해요. 어린이집 근처 가까운 카페로 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었어요. 분 단위 재가면서 자유를 만끽했어요.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죄책감을 느꼈어요. 아이를 조금이라도 늦게 데리러 가면 모성애 없는 엄마처럼 보일까봐 종종 걸음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찾으러 갔어요. 제가 얼마나 달콤한 30분을 보내고 왔는지 애써 숨기면서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하는 엄마라니,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았죠.
 
‘애는 엄마가 봐야지.’, ‘세 돌까지는 엄마가 집에 데리고 있어야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육아보다는 일이 더 적성에 맞았고, 아이와 분리된 저만의 시간이 꼭 필요했어요. 그러면서도 마음은 늘 불편했어요. '엄마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육아를 어린이집에 떠넘기고 있는 게 아닐까...' 어린이집은 제게 구세주였지만 동시에 늘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어요.  


어린이집과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어요(출처 : pexels)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1년을 보내고 선생님과 면담을 했어요. 그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혼자 밥도 잘 먹고 낮잠도 푹 잔다고 했어요. 제가 집에서는 밥을 다 떠먹여준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어요.
 

“왜 그러셨어요? 혼자 엄청 잘 먹는데.”



저는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보다는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키즈카페 같은 곳에서 잠깐 본 모습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가 혼자 놀지 않고 무리를 지어서 노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당시 집에서는 책에 흥미를 안 보였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책을 본다고요.
 
‘나는 내 아이를 다 안다’는 착각,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죠. 그걸 저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두 돌도 안 된 아이는 이미 어린이집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어요. 제가 모르는 세계가 벌써 열린 거죠. 그 때 생각했어요.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아이의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걸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저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제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저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요. 그곳에서 아이는 바깥세상의 규칙을 배우고 또래 친구들, 선생님과 관계를 쌓아가고 있어요. 지금 세 돌 다 되어가는 아이는 제가 한번도 알려준 적 없는 말과 행동, 노래를 매일 배워 와요.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어요.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동반자라고요. 아이의 말, 행동, 생활습관에 대해 교사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고민이 되는 지점 있으면 솔직하게 물어보려 하고 있어요.

매일 하원 시간. 오늘도 저는 고민합니다. '딱 10분만 더 있다 갈까.' 그러다 어린이집이 가까워지면 저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더라고요.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 해요.

3월 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엄마도 아이도 힘겨운 한 달을 보냈을 거예요. 우리 너무 죄책감 갖지 말아요. 엄마도 아이도 함께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요.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엄마발달백과’ 시즌1을 마칩니다. 그동안 엄마발달백과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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