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참나물, 기름 냄새, 그리고 모국의 향수 한 접시
몇 주 전, 지인의 밭에서 직접 뜯어 온 참나물이 냉장고 속에서도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쳐서 먹기도 하고, 깻잎 대신 김밥 속에 넣어 보기도 했는데, 참나물 특유의 쌉쌀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색다른 풍미를 더해주었다. 일반 채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은근한 쓴맛, 그 자연스러운 맛이 참나물의 매력이다.
사실 나는 평소에 나물을 자주 즐겨 먹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지인이 “참나물을 부침개를 해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라고 강력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번엔 부침개에 시도해 보았다.
부침개는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이름도, 맛도 천차만별이다. 녹두를 갈아 만든 빈대떡, 김치나 해물, 파가 들어간 전, 여러 재료가 어우러진 모둠전까지, 그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또, 동태 전·굴전·버섯 전·고추전처럼 재료의 형태를 살려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혀 부쳐내는 전들도 있다.
참나물로 부침개를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맛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참나물만 넣기보다는 오징어와 대파를 곁들여 함께 부쳐 보기로 했다. 술안주라기보다는 저녁 반찬으로 준비한 소박한 한 끼 반찬이다. 비 오는 날이면 부침개와 동동주가 떠오르지만, 오늘은 그저 우리 부부만의 조용한 저녁 밥상에 오를 반찬이다.
부침개는 반죽보다도 불 조절과 기름의 양이 중요하다. 약한 불에서는 눅눅해지고, 센 불에서는 금세 타버린다. 겉은 노릇노릇 바삭해야 입맛을 돋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비주얼도 중요하다. 조금 투박했지만 나름 부침개의 형태를 갖췄고, 주방에서의 ‘남편 솜씨’를 무사히 완수했다.
우리 부부는 먹는 양이 많지 않아 세 판만 부쳤다. 산나물의 비중을 전체 재료의 약 70%로 맞췄지만, 막상 접시에 올려 보니 오징어가 더 눈에 띄었다. 젓가락도 자연스럽게 오징어 쪽으로 향했다. 산나물은 파전처럼 넓게 퍼지며 푸른빛을 띠었고, 열을 받으며 얇고 투명한 층을 이뤘다.
먹어 보니 김밥이나 비빔밥에 넣었을 때 느껴졌던 쌉쌀한 맛은 의외로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아마 데치고 익히는 과정에서 특유의 쓴맛이 많이 사라졌고, 오징어나 대파의 향이 그 맛을 눌렀던 것 같다. 참나물의 존재감이 다소 약해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침개였다.
그렇다고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진한 참나물의 풍미를 기대했기에 상대적으로 실망감이 있었던 것 같다.
부침개를 부치며 문득 온갖 잡념이 스쳐 지나간다. 익어가는 기름 냄새 속에 정신이 잠시 멈춘 듯, 손은 부침개를 뒤집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을 헤매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내가 아내를 도와 주방에 서게 되었을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와 정겨운 손맛. 어릴 적 부엌에서 맡던 그 냄새, 지글지글 익어가던 소리, 간식을 기다리며 부엌 근처를 맴돌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부엌에서, 그 옛날의 시간들이 겹쳐지듯 떠오른다.
오늘의 부침개는 단순한 요리가 아니었다. 모국의 향수를 담아낸 저녁이었고, 이민자의 식탁 위에 놓인 ‘그리움’ 한 접시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 부부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식탁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