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공항의 밤, 보름달 아래서 아들을 보내다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곳, 추석날 밤 밴쿠버공항에서의 이야기

by 김종섭

공항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온다. 그 사이에는 누군가를 맞이하러 온 사람, 또 누군가를 배웅하러 온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한쪽에서는 헤어짐의 순간을 아쉬워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랜만의 재회에 웃음과 포옹이 이어진다. 공항은 언제나 묘한 감정이 흐르는 곳이다. 한 공간 안에 설렘과 그리움, 환희와 쓸쓸함이 나란히 머무는, 인생의 여러 얼굴이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내가 그 공항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마중을 맞이하고, 또 떠나는 이별을 하면서 수많은 날을 보냈던 밴쿠버 공항이다. 해외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도 공항에는 늘 아내와 아이들이 서 있었다. 나는 아내와 아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모습, 작별의 순간에 아쉬워하던 표정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할이 바뀌었다. 이제 나는 공항에서 아들을 배웅하는 부모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매번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던 시간을 넘어, 이제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번 추석 연휴를 맞아 캐나다 부모 집에 머문 14일간의 여정 동안 아들은 부모를 위해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떠나는 날까지도 근교 산을 등반해 정상의 폭포를 같이 보고, 산에서 내려와 호수 피크닉장에 들러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마지막 날까지 추억을 쌓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단골 팀홀튼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고 잠시 몇 시간 휴식을 취한 뒤,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저녁밥을 함께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집에서 공항까지는 약 40분 거리이다. 캐나다의 퇴근 시간대를 조금 지난 저녁 7시, 도로의 차량 흐름은 비교적 한산했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니 의외로 고요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한항공의 밤 비행기 노선이 새로 생겨 오랜만에 밤 시간대에 배웅을 나왔다. 공항 밖으로 쏟아지는 불빛 아래, 아들의 캐리어를 끌고 짐 체크인 카운터로 함께 걸었다. 예전에 나는 항공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정 시간대에 이륙하는 중국 경유 항공편을 종종 이용한 경험이 있어 밤 공항의 풍경을 익숙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인지 오늘 밤의 공항도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아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말없이 적막했다. 아내는 아들을 보내면서 예전에 남편이 떠날 때 보이던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젠 수많은 이별의 연습에 눈물이 말라버리는 감정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들의 빈자리가 벌써 느껴지는 듯, 오늘따라 공기마저 갑자기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늘은 캐나다 시각으로 한국보다 하루 늦은 한가위 추석날이다. 밤하늘에는 유난히 둥근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저 달을 중심으로 한국까지의 거리를 떠올리니, 무려 10시간의 하늘길. 가깝다고 하기엔 너무 멀고, 멀다고 하기엔 마음이 닿는 거리이다.

​집에 도착하니 문득 텅 빈 집처럼 느껴졌다. 아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한없이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아들의 떠나간 흔적을 덮어버리는 듯했다. 출국 전 아들은 웃으며 “엄마 아빠랑 놀아주느라 힘들었네”라며 농담처럼 말하고 나갔지만, 그 말속엔 부모를 향한 깊은 정이 묻어 있었다. 정말 이번 방문 동안 아들은 부모에게 최선을 다해 많은 시간을 내어 놀아주고 마음을 나눠주었다. 함께 보낸 시간들이 벽 한 켠에 걸린 가족사진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짧았지만 깊었던 14일. 이번 추석은 아들의 방문 덕분에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한가위를 보낼 수 있었다. 이별의 공항에서 시작된 그 따뜻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집 안에 남아 있는 듯하다.

​이 세상 모든 길 위에서 만나는 오늘처럼, 이별은 언제나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우리는 다시 일상이라는 궤도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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