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의 배려와 기다림, 그리고 반려견의 가족의 사랑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는 걸까. 기쁜 일이 생기면 늘 먼저 전화하는 아들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강아지가 욕조에 배변을 했어요.”
아들 부부가 출근하면 반려견은 하루 종일 혼자 집을 지킨다. 다행히 아들은 비교적 일찍 출근해 오후 두 시 반쯤이면 퇴근해 집에 돌아오고, 며느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평소엔 배변 문제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어제는 집에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온 아들은 반려견이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눈치만 보는 모습이 이상하다고 여겼다. 들어가 보니 욕조 안에는 설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반려견은 털에 묻은 설사 때문에 거실로 나오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짠했다고 했다. "얼마나 급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욕조를 배변 장소로 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스스로 화장실에 갇혀 머물렀다는 사실이었다. 아들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반려견이 너무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사실 오늘은 반려견의 생일이다. 벌써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문득 다섯 해 전, 아들과 함께 반려견을 분양하러 갔던 날이 떠올랐다. 아주 작던 몸으로 아들 품에 안겨 집으로 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아들 손에도 가볍게 안기던 작은 강아지였는데, 이제는 훌쩍 자라 어엿한 성견이 되어 아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든든한 가족이 되었다. 욕조에서 보여준 그 배려와 기다림은 다섯 해 동안 자라온 반려견의 마음의 깊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영리한 반려견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이 지목한 물건을 가져오거나, 묘기를 부리는 장면들도 흔하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욕조를 선택한 반려견의 행동이야말로 그 이상의 자랑해주고 싶은 지혜라고 생각한다. 화장실 중에서도 배수가 용이하고 마감재가 오염에 강한 욕조를 선택함으로써, 집안을 더럽히지 않으려 했던 본능과 배려가 섞인 그 행동은 분명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아무리 지능이 높다 해도 반려견에게는 인간의 일상이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행동은 본능과 배려가 섞인 그 행동은 분명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아들의 반려견은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견종 중 하나로 알려진 보더콜리다. 하지만 아무리 영리한 반려견이라도 모든 행동이 계산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저 주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지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들은 마치 자기 반려견만이 해낼 수 있는 특별한 행동처럼 매우 자랑한다.
물론 욕조에 실수를 한 후 스스로 그 자리에 머물며 기다린 오늘의 이 행동은, 모든 반려견이 쉽게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일 수 있다. 세상 모든 부모가 자기 자녀가 어떤 일을 해냈을 때 특별한 재능이라 생각하듯, 아들도 자신의 반려견이 오늘 보인 행동을 보고 진정한 천재견이라 믿고 있다. 솔직히 말해, 오늘 반려견이 보여준 행동은 천재견으로 착각해도 될 만큼 대단한 행동이었다.
산책길을 걸을 때면 만나는 모든 반려견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르고, 이렇게 눈빛이 따뜻할까.” 아마도 인간과 반려견은 오래전부터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도록 신이 허락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아들의 반려견을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그 작고 따뜻한 생명에게서 가족의 정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반려견도 이렇게 예쁜데 손자가 생기면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런 상상을 하며 세월의 빠름을 느끼는 나이가 된 것이다.
오늘 아들의 전화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생명과 생명 사이에는 언어보다 깊은 교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욕조라는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반려견의 행동 하나가 다섯 번째 생일의 의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 기다림과 배려 속에는, 가족이란 서로를 믿고 기다려주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조용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오늘, 나는 반려견의 따뜻한 마음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시간의 깊이를 다시금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