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이 일상이 된 시대, 진짜 목소리마저 의심하다
아내의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번호가 표시되지 않아 아내는 주저 없이 거절 버튼을 눌러버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다시 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혹시 중요한 전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내는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자신을 캐나다 정부 기관인 서비스 캐나다(Service Canada)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발신자 정보조차 없는 번호로 정부기관 사칭 전화가 많다는 점 때문에 스팸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아내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조금 전과 같은 ‘발신자 표시 없음’ 번호로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아들이 아내의 전화기를 받았다. 나와 아내는 전화를 끊으라는 손짓을 보냈지만,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를 이어갔다. 상대방의 발음이 또렷하지 않아 아들은 여러 차례 다시 말해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는 “방금 잠에서 깬 사람 같은 목소리로 어떻게 사기를 치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들은 통화를 이어가던 중 상대에게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오늘 전화를 건 이유에 대한 정부의 공식 요청 문서를 이메일로 보내 달라”라고 요구했다. 상대는 처음에는 거절하는 듯하더니 곧 태도를 바꾸며 ‘보내주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이메일이 도착했고, 이어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아들이 이메일을 확인한 뒤 나와 아내에게 “정말 서비스 캐나다 직원이 맞다”라고 손짓으로 알렸다. 이후 직원은 아내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고 아내에게 본인 확인 절차로 생년월일과 기본 인적 사항을 물어왔다.
며칠 전 아내가 고관절 통증으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 질병 실업급여(EI, Sickness Benefit)를 신청한 상태였다. 직원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바로 이 실업급여 신청에 대한 사실 확인 및 추가 정보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리는 한 달에도 수없이 스팸 전화를 받는다. 특히 캐나다에 살면서도 중국어로 걸려오는 전화가 많아 여기가 캐나다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나면 늘 씁쓸하다. 적어도 캐나다에서라면, 사기 전화라 하더라도 예의를 지켜 영어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묘한 불편함 때문이다. 아마도 스팸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성씨나 이름을 보고 중국인으로 착각해 전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결국은 상대를 잘못 겨냥해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결과가 된다. 이런 경험이 많다 보니, 이제는 발신자 표시가 없으면 스팸이라 여기고 전화를 받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전화 소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캐나다 정부 직원과의 통화를 마친 직후, 이번에는 내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집은 현관에서 세대 번호를 누르면 휴대전화로 연결되는 인터폰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아보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며 70대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현관 모니터에 표시된 세대주의 이름을 보고 한국인이라 판단해 무작정 인터폰 번호를 누른 듯했다. 인터폰을 누른 구체적인 목적은 알 수 없었지만, 전혀 모르는 분에게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오는 상황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오늘 연이어 겪은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느낀 건 단순했다.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낯선 불편함도 늘 곁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 식탁에서 벌어진 전화기 소동은 잠시 긴장을 주었으나, 결국 웃음을 선사한 해프닝이었다. 이 소동은 우리 가족에게 작은 이야기 하나를 남겨 주었고, 그렇게 오늘의 추억거리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