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산책길에서 마주한 기억, 그리고 마음속 제사상
오늘은 아내와 산책을 다녀왔다. 우리 부부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향하는 익숙한 산책길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늘 그렇듯 길은 변함없이 평화롭다. 가을의 스산함이 깃든 나무들 사이로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바람 한 줄기에도 낙엽이 부드럽게 흩날린다. 이 정겨운 길 곳곳에는 언제나처럼 쉼을 주는 벤치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오늘, 유독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벤치가 있었다. 산책로 한쪽에 자리한 낡은 나무 벤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등받이에는 작은 검은 명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곳의 많은 벤치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새겨, 가족이나 친구가 기증한 것들이다. 삶의 한 순간을 이 길 위에서 보냈을 누군가의 이름이 이제는 영원히 이곳 풍경의 일부가 되어 머무는 것이다.
내일은 한국 시간으로 추석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부모님 생각을 하며 산책길을 걸었다.
어제도 이 길을 걸었지만, 오늘 그 벤치 위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짙은 분홍빛 생화가 여러 송이 꽂혀 있었다. 아마도 어제 우리가 지나간 뒤, 혹은 오늘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 유가족이 다녀간 흔적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그 작은 꽃들은 고인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음을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벤치에 놓인 꽃을 바라보는 순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가슴 깊이 밀려왔다.
추석이 다가오면 늘 성묘가 먼저 떠올랐다. 비좁은 산길을 오르내리며 풀을 베고 제상을 차리던 기억, 조상의 묘 앞에 소주 한 병, 북어포, 배, 사과 몇 개를 올리고 절을 하던 그 시간들. 그때는 너무나 당연했던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먼 기억이 되어버렸다. 귀국할 때마다 부모님 산소를 찾았지만, 그 자리에 서면 늘 죄송하고 또 그리웠다.
우리는 말없이 벤치 앞을 지나쳤다.
고요한 호수와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벤치에 깃든 누군가의 기억이 바람결처럼 스쳐갔다. 그 순간, 묵묵히 옆을 걸어주는 사람의 발소리에서 삶의 온기를 느꼈다.
이 벤치는 단순한 나무와 철제의 조합이 아니라, 사랑의 흔적과 영원한 기억이 깃든 하나의 마음의 그림 같았다.
타향의 호숫가 벤치 앞에서, 나는 부모님의 빈자리를 다시 느꼈다. 추석의 달빛이 한국 하늘 위로 떠오를 그날, 이곳 캐나다의 하늘 아래에서도 마음속 제사상을 차려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리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