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의 식사가 전해준 가족이야기

한국과 다른 식사 문화 속에서 경험한 '가족'이라는 특별한 저녁

by 김종섭

저녁 식사로 프랑스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곧 추석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큰아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명절을 앞두고 차례상 대신 프랑스 요리를 택한 아들의 마음속에는, 먼 타국에서나마 명절의 의미인 가족 간의 정을 나누고자 하는 애틋함이 담겨있었다. 메뉴는 풀코스 요리에 사이드 메뉴 두 가지를 추가했다. 접시가 놓이고, 젓가락과 숟가락 대신 포크와 나이프가 세팅되었다. 식기부터 다르다는 것은 곧 먹는 방법과 맛이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사이드 메뉴와 첫 번째 요리가 천천히 식탁 위에 올랐다. 음료는 우리 부부는 와인을, 작은아들은 맥주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내가 맥주를 고르려 했지만, 아들은 신맛이 강해 아빠 입맛에는 맞지 않을 거라며 와인을 권했다. 와인은 레드로 주문했고, 직원은 샘플로 부드러운 맛과 강한 맛 두 가지를 가져와 시음을 권했다. 차이를 느끼기 쉽지 않았지만, 결국 아내는 부드러운 와인을, 나는 강한 맛을 선택했다.


식사 중 나는 와인을 맥주 마시듯 들이켰다. 아내는 “와인은 입안에 머금듯 천천히 즐겨야 한다”라고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술을 한 번에 털어 넣는 문화가 익숙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술조차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즐겨야 했다. 낯설었지만, 그 방식은 또 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달리 서양은 '느림의 미학'으로 술을 대하고 있었다.


한국 식당에서는 음식이 빠르게 나오고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곳은 코스마다 여유를 두고 요리가 이어졌다. 접시가 비워져야 새로운 요리가 세팅되었고, 서버는 물 잔을 수시로 채워주며 식사 속도를 조율했다. 이런 느린 템포는 한국식 식사에 익숙한 나에게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한국 음식점과 다른 것은 직원들의 태도였다. 손님이 많아도 주방과 서버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움직였다. 이런 모습은 서양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비스 방식이었다. 한국 식당처럼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다림조차 식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코스의 마지막은 디저트였다. 음식이 특별히 강렬한 여운을 남기진 않았지만, 색다른 경험과 분위기에서 오는 즐거움은 충분했다. 몇 년 전 프랑스 여행에서 맛본 육회는 한국 음식과 닮아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낯선 맛 속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명절의 의미를 나눴다는 사실에서 오늘의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민족 국가인 캐나다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현지의 손맛으로 즐길 수 있다. 그동안 외식은 주로 중국이나 베트남 음식에 머물렀지만, 이번 프랑스 요리는 조금 낯설면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맛은 한국 음식보다 담백하고 덜 자극적이었다. 양념과 강한 맛에 익숙한 한국인의 입맛에는 처음엔 심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재료 본연의 맛과 코스가 주는 리듬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격은 한국 음식보다 높았지만, 명절을 앞두고 타국에서 마음을 나눈 가족과의 자리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아들은 식당에 들어가기 전 “가격이나 맛을 한국 음식과 비교하지 말라”라고 당부했다. 늘 비교하던 아빠의 습관을 미리 알아챈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오늘도 마음속에서 가성비를 먼저 떠올렸지만, 아들은 음식이 주는 분위기와 경험 자체를 중시했다. 아들이 중시한 '경험'은 결국 명절에 가족이 함께 모이는 그 행위 자체의 의미와 맞닿아 있었다. 세대와 문화의 차이 속에서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늘의 대화와 맛, 분위기가 하나의 기억으로 남았다. 평범한 하루였지만, 가족과 함께한 이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이 비전통적인 프랑스 식사가 오히려 타국에서 맞이하는 우리의 가장 진실된 추석 전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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