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매장에서 만난 유부차를 끄는 남자

육아와 살림을 함께 나누는 신세대 가장

by 김종섭

휴일 오후 캐나다 월마트 주방용품 코너 앞에서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형광등 불빛이 매끈한 타일 바닥과 높이 쌓인 선반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한 젊은 남성이 깊은 고민에 잠긴 듯, 선반 위 주방용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남성은 캐주얼한 재킷과 청바지 차림, 등에 멘 커다란 백팩이 꽤나 무거워 보였다. 겉으로는 평범한 쇼핑객이었지만, 그의 옆에는 검은색 유모차가 있었다.

남성의 백팩 안에는 아마 기저귀, 물티슈, 간식 등 아이를 위한 비상용품이 가득할 것 같다. 그가 끌고 온 것은 단순한 ‘유모차(乳母車)’가 아니라, 육아와 살림을 함께 짊어진 ‘유부남의 차’, 즉 ‘유부차(有夫車)’라고 부르면 이상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선은 정면의 주방용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가족의 살림을 책임지는 ‘주부 9단’의 모습과 흡사했다. 잠시 지켜보니 그는 분명 아내와 함께 살림을 오래전부터 나누어 온 숙련된 신세대 가장으로 보였다.

이제 육아와 주방살림은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특히 캐나다처럼 개방된 사회에서도, 남성이 혼자 유모차를 끌고 와 장을 보는 모습은 여전히 눈길을 끈다.
여성이 혼자 장을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풍경이지만, 남성이 유모차를 끌고 주방용품을 고르는 모습은 한 번 더 시선을 잡는다.

물론 부부가 교대 근무를 하거나 서로 다른 요일에 일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육아는 부부의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오늘처럼 부부 중 남녀 관계없이 공동으로 유아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옛날처럼 남편은 경제활동, 아내는 가정 내 주부로서의 역할만으로는 더 이상 살기 힘든 세상이다. 한국의 맞벌이 가구 비중은 이미 46%를 넘어섰고, 캐나다에서는 자녀가 있는 부부의 70% 이상이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다. 부부 모두가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녀 계획을 세우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신중한 일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현실적 무게가 자리하고 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가 계획에도 없던 외출로 집을 비운 날, 백일도 안 된 아기를 혼자 돌보던 몇 시간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시절엔 ‘유아 돌봄은 아내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익숙하지 않은 행동에 서툰 나로서는 단 몇 시간조차 그렇게 고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때를 떠올리며 지금 눈앞의 젊은 남성을 보니, 그는 얼마나 많은 일상을 감당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는, 시대적으로 비교적 여유롭고 만족할 만한 환경에서 육아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 시절은 남편 혼자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아내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쇼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시대였다. 집 근처 쇼핑을 갈 때도 부부가 나란히 유모차를 끌고 가던 모습이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경제활동뿐 아니라 유아 양육과 주방 살림까지 부부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세대가 되었다. 오늘 유부차를 끌고 쇼핑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면서, 이 현상은 캐나다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많은 가정의 공통된 현실이라는 공감대가 느껴진다. 저출산 시대, 아내도 함께 경제활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대의 무게가 고스란히 이 한 장면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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