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저번 달, 아내가 드디어 은퇴를 했다. 이제 우리 부부는 같은 시기에 퇴직한, 말 그대로 ‘은퇴 부부’가 되었다.
아내가 퇴직한 후 우리의 일상은 조금 달라졌다. 아침이면 집 앞 숲길을 함께 걷는다. 1시간 반쯤 걸으면 12,000보가 훌쩍 넘는다. 정해진 시간도, 순서도 없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걷는 자유로운 산책. 그게 요즘 우리 부부의 루틴이다.
며칠 전, 아내가 은퇴 후 하루 일과를 정리해 내게 말했다. “아침은 9시까지는 자유롭게 일어나는 걸로 해요.” 학교 다닐 때도, 직장 다닐 때도 늦잠을 자본 적 없던 아내는 이제야 비로소 ‘늦잠의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고 했다.
오전에는 산책, 오후에는 그림과 영어 회화, 저녁엔 ‘동네 한 바퀴’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림을 시작한 건 어제였다. 유튜브를 보며 스케치북을 펼치더니 오늘은 완성된 첫 작품을 내게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훨씬 잘 그렸다. 카톡으로 그림을 본 큰아들이 물었다. “엄마, 야외 스케치 나가서 그린 거예요?” 아들은 마치 야외에서 이젤을 세우고 그린 줄 알았다.
사실 그 그림은 작은아들이 지난 마더스데이에 선물해 준 그림 도구 세트로 그린 것이다. 그동안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그 선물이 이제야 제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아내가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하자
나도 문득 ‘나의 취미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후에는 도서관에서 글을 쓰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글 너머의 시간을 채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기타가 떠올랐다. 몇 번이고 마음먹었지만, 늘 작심삼일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혼자 독학으로 천천히, 손끝 감각부터 익혀보기로 했다.
지금은 2일째. 코드를 잡을 때마다 손가락 끝이 시큰하고, 음은 삐걱거리며 흘러나온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말한다. “굳은살이 배길 때까지 해야지요.”
3일째가 되자 조금 흔들렸다. 젊은 시절, 통기타가 유행이던 때 친구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청바지와 기타, 그리고 그 시절의 자유였다.
지금에 와서 그때처럼 멋지게 연주할 수 있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라는 말이 정말 내게도 통할까?
하지만 포기하긴 이르다. 아내가 그림을 시작했듯 나도 기타로 하루를 그려볼 생각이다. 언젠가는 아내의 그림 옆에서 내 기타 선율이 함께 흐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은퇴 후의 삶은 예고 없이 찾아온 변화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의 빈자리를 ‘취미’로 채우는 일. 돈보다 여유, 안정보다 의미를 좇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배워간다.
앞으로의 목표는 단순하다. 건강한 루틴 속에서 내 주변을 맴도는 하나의 ‘나만의 취미’를 찾는 것. 일로부터 벗어난 시간이지만, 인생의 또 다른 일터가 되어줄 그런 취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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