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농장에서 만난 허수아비, 한국의 가을이 떠올랐다

낯선 나라의 허수아비 한 구석에서, 그리운 한국의 들판을 만났다

by 김종섭

가을의 공기가 깊어지는 오늘, 늘 걷던 길이 아닌 새로운 공원 산책길을 택했다. 공원 안에는 한국의 주말농장 형태를 갖춘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s)이 있었다. 농장 안에는 저마다의 개성과 특성이 묻어 있는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어느 농장에는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산책하던 중 그 모습을 보고 발걸음이 자연스레 농장에 있는 허수아비 쪽으로 향했다.


캐나다에 온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이렇게 허수아비를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가을이면 늘 논이나 밭마다 익숙하게 서 있던 허수아비가, 이곳에서는 어쩐지 낯설고도 반가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 반가움은 아마도 멀리서도 잊히지 않는 고향의 가을 풍경이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놀라웠던 건, 허수아비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던 모자 쓴 ‘아저씨’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분홍색 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여자 허수아비였다. 얼굴에는 눈과 코가 없고 앞뒤가 구분되지 않아, 그저 앞치마가 있는 쪽이 ‘앞’이라는 걸로만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자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딘가 익살스러워 보였다.


한국에서 허수아비는 대부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또한 의상 또한 한국인들이 즐겨 입는 평범한 옷차림이기에, 캐나다의 허수아비는 조금은 낯설고 생경한 인상을 주었다. 허수아비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허수(虛)’는 ‘가짜’라는 뜻을,

‘아비’는 아버지를 낮춰 부르는 옛말을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 본 허수아비가 여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문득 이름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허수어미’나 ‘허수줌마’쯤으로 불러야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게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궁금하던 차에 캐나다에서 허수아비의 뜻을 찾아보니 Scarecrow라고 부른다고 한다. ‘Scare’(겁주다)와 ‘Crow’(까마귀)의 합성어로, 새나 동물을 쫓아내기 위한 뜻이 있다고 한다. 뜻만 보면 단순히 농작물을 지키는 장치 같지만, 한국에서의 허수아비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한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정이 깃든 존재였다.


한국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서는 언제나 사람 냄새와 정겨움이 느껴진다. 농부의 손때가 묻은 허수아비는 그 자체로 ‘노동’과 ‘계절’의 상징이자, 어린 시절 마음속에 남은 가을의 한 장면이었다.


그래서일까. 캐나다의 허수아비를 보는 순간, 내 마음속에도 고향의 들판이 스며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벼이삭, 그 위로 떨어지는 붉은 단풍잎, 논두렁을 따라 걸으며 들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기억이 낯선 캐나다의 하늘 아래에서 다시 피어나는 듯했다.


캐나다의 가을도 아름답다.‘단풍의 나라’라는 이름답게 붉고 노란 잎들이 도시를 물들인다. 하지만 일부 특정 지역에서만 단풍의 절정을 볼 수 있고, 대부분의 산에는 늘 푸른 침엽수들이 자리하고 있어 한국처럼 온 산이 물드는 장관은 드물다.


대신, 이렇게 문득 한국의 정서를 닮은 한 장면을 만날 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마음이 닿는 순간, 그것이 바로 ‘고향’이 되는 듯하다.


오늘 본 허수아비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고향의 가을을 떠올리게 한 추억의 흔적이었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허수아비의 모습 속에서 오래된 한국의 들판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계절을 다시 떠올렸다.


오늘은 허수아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을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부부의 그리움과, 고향의 풍요로움이 함께 서 있었다.


이제 〈그 길 위에서 만난 오늘〉이라는 여정을 30화로 마무리한다. 그동안 나의 일상의 길을 함께 걸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남겨주신 한 줄의 공감과 짧은 댓글 한마디가 내 하루를 지탱해 준 따뜻한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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