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벼룩시장에서 만난 한국돈과 지갑 이야기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비가 내린다. 오후가 되면서 잠시 빗줄기가 멈췄지만,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여전히 맑아지지 않았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다시 비를 쏟아낼 듯 잔뜩 찌푸린 채였다. 이런 날씨는 전형적인 밴쿠버의 가을 풍경이다. 그래서 밴쿠버에는‘레인쿠버(Raincouver)’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오늘은 근교에서 플리마켓(Flea Market)이 열린다는 소식에 지인과 함께 구경에 나섰다. 다른 지역의 플리마켓은 몇 번 가보았지만, 지인이 추천한 이곳은 오늘이 처음이다.
플리마켓은 시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센터(Community Centre)와 마주하고 있었다. 넓은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가득했다. 이곳 역시 다른 플리마켓처럼 매주 주말(토요일·일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며, 입장하려면 2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2달러가 큰돈은 아니지만, 물건을 사기 위한 시장에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의 정서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플리마켓마다 입장료는 보통 1달러에서 5달러 정도로 조금씩 다르다. 공연장도 아닌데 입장료를 내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굳이 따지고 들기엔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일 뿐이다.
대부분의 캐나다 플리마켓은 운영비와 시설 유지비 명목이라지만, 여전히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둘이 아니니, 그냥 이곳 중고시장의 특성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돈을 내고 입장했다.
입구를 지나 운동장만큼 넓은 공터로 들어서자, 구획선 안에 노점상들이 자판대를 펼쳐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흐린 날씨 탓인지 빈자리가 제법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플리마켓은 야외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양쪽 건물 내부에서도 동시에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눈에 익숙한 오만 원권과 만 원권, 한국 지폐 모양을 본뜬 지갑이 눈에 띄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지갑이었지만, 한국 지폐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의미로 다가왔다. 해외에서 한국 제품을 마주할 때면, 단순한 물건 하나에도 왠지 모를 여운이 남기 마련이다.
바로 옆 매장으로 옮겨가던 중, 화폐가 가득 담긴 앨범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마침 한국 지폐 지갑을 본 직후라, 이 앨범 속에도 혹시 오래된 한국 지폐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하지만 기대는 결국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앨범 속에는 현재 사용 중인 천 원권 두장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중고시장에서는 가끔 '보물' 같은 물건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 하지만 항상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낯선 곳에서 한국 물건을 발견할 때 그것이 어떤 물건이든 가치를 따지지 않고 작은 행운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 한국 중고시장에서 오래된 지폐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설렘도 지금 해외에서 느끼는 이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외국인 판매자가 그 가치를 모른 채 한국의 오래된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대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해외 중고품을 구경할 때마다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호기심의 이유가 된다. 설령 상인들이 한국 물건이 진품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그 깊은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설레기도 했다.
오늘은 특별한 것을 바라거나 원해서 중고시장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 지폐 모양의 반지갑과 천 원짜리 지폐를 보는 순간, '혹시 이곳에 다른 한국 물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나름대로 따뜻하게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