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주말, 육회와 부대찌개로 채운 따뜻한 이민자의 식탁
오늘 11월 1일, 첫 번째 주말 오후. 아들 내외와 함께 집에서 육회와 부대찌개를 준비해 먹기로 했다. 아들은 몇 달 전부터 육회가 먹고 싶다고 했다. 어릴 적 한국에서 먹던 육회의 맛이 아직도 혀끝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며칠 전 한국 정육점에서 1파운드(약 454g)에 18불, 총 2파운드(36불, 한화 약 3만 6천 원) 어치 썰어 있는 육회를 주문해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육회를 사가지고 오던 날 아내와 함께 가져온 육회의 일부로 육회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문득 아들이 어릴 때 처음 날 음식을 접했을 때, 억지로 입에 넣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입에 넣었던 음식을 뺏고 하면서 씨름을 많이 했다. 그중에서도 낙지나 회, 그리고 육회는 특히 힘들어했다. 그러나 혀끝에서 그 맛을 느끼는 순간, 그 음식은 생애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은 그 맛을 기억하며, 스스로 육회를 찾는 아들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이민 와서 처음 정착했을 때는 한국 음식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식당에서도 삼겹살 메뉴는 없었다. 한인 식당이라 해도 불고기나 일반적인 탕 종류 정도가 전부였다. 삼겹살이 먹고 싶을 땐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배 부위를 사서 직접 썰어 구워 먹었다. 그렇게라도 한국의 맛을 잊지 않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살았다.
지금은 한인 식당이 많이 생겨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한 한국 음식이 메뉴에 오른다. 육회도 몇몇 식당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사실, 좋은 식재료만 있다면 집에서도 충분히 풍미 있게 즐길 수 있는 한국 음식 종류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아들이 먹고 싶었던 육회와 부대찌개로 아내는 점심상을 차려냈다.
사실 나는 아내가 육회를 만들 것이라 생각하고 주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이 올 시간에 임박하자 아내가 나에게 육회를 만들라고 했다. 이전에 아내와 몇 번 육회를 만들어 먹을 때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아내는 당연히 이번에도 내가 육회를 만들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전의 레시피를 떠올리면서 부랴부랴 육회를 완성했다.
아내는 아침에 한국 마트에서 신선한 한국산 배를 사 왔다. 캐나다산 배는 작고 투박한 데다 당도가 낮아 육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배만큼은 한국 배가 육회에는 제격이다. 배 채 써는 작업은 아무래도 아내의 손이 섬세해서 아내의 손에 맡겼다. 배를 채칼로 곱게 썰어 육회를 담은 접시 옆에 수북이 올리고, 그 위 육회 중앙에 노른자를 얹었다. 그 한 접시만으로도 식당 부럽지 않은 완벽한 한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육회는 완전히 해동된 것보다 살짝 살얼음이 낀 상태에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입안에서 얼음이 서서히 녹으며 고기의 감칠맛이 퍼질 때, 잠시나마 한국에서 먹던 그 맛과 분위기가 되살아난다.
대부분의 가족들 외식은 식당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 가족은 가능한 한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걸 더 좋아한다. 된장찌개든 감자탕이든, 집에서 만들면 식당 못지않은 맛이 난다.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시간만큼은 한국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 11월의 첫날. 아들과 며느리, 집사람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 오늘 주 메뉴는 육회이다. 옆에는 부대찌개가 함께 놓였다. 아들이 젓가락으로 육회를 집어 한 입 먹더니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하는 말이 왠지 진작 만들어줄 걸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들었다. 육회를 먹는 순간에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가 끊이지 않던 식탁이었다. 한국에서 먹던 그 맛과 기억이 스르르 떠오르는 듯했다. 이런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꽤 특별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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