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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타임이 해제된 캐나다 시간, 연어는 고향으로 향했다

밴쿠버 서머타임이 해제된 11월 2일, 연어의 회귀 풍경

by 김종섭

11월 2일, 캐나다 밴쿠버의 늦가을. 오늘은 서머타임이 해제되는 날이다. 새벽 2시가 되자 시계는 다시 새벽 1시로 돌아갔다. 한 시간을 번 듯하지만, 실상은 본래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디지털시계는 자동으로 조정되었지만, 거실 벽의 아날로그시계와 차 안의 시계는 손으로 직접 맞췄다. 그 단순한 행위가 왠지 모르게 묘하게 느껴졌다. 마치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가듯, 시간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산책길을 따라 강둑으로 향하니 다리 밑에서 몇 명의 낚시꾼이 보였다. 허리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차가운 물속에 서서 낚싯대를 흔드는 손끝에는 늦가을의 기운이 묻어 있었다. 그들의 낚싯줄이 물살을 따라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순간 자연의 고요함이 인간의 욕심으로 흔들리는 듯한 생각이 스쳤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연어 떼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향하고 있었다. 연어들은 바다에서 수년을 보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기억하고 돌아온다. 과학자들은 이 귀소 본능이 후각세포 속에 각인된 고향의 냄새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어는 폭포를 뛰어오르고 바위에 부딪히며,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다.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생명을 잇는 연어의 회귀는, 자연이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생명의 의식이었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

강둑 한쪽에는 이미 힘이 다한 연어들이 보였다. 물가에 나뒹구는 연어의 몸은 쓸쓸했지만, 그 곁에서 여전히 오르는 연어들의 움직임은 삶의 끈질긴 의지를 보여줬다. 물살에 밀리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몸짓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낚시꾼들은 여전히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다. 물속은 ‘물 반 고기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 이곳에서 뜰째나 손으로 잡아도 될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은 규칙을 지키며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연어 낚시는 바늘이 입에 정확히 걸려야만 합법이고, 눈이나 지느러미에 걸리면 즉시 방생해야 한다. 그 룰을 지키는 모습에서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느꼈다. 산란기의 연어를 두고 낚시를 하는 모습은 어쩐지 아이러니했지만, 그 속에서도 자연의 질서를 지키려는 인간의 균형이 보였다.

하늘은 잿빛 구름에 덮여 낮았다. 햇빛 한 줄기 비치지 않았지만, 강물은 흐린 하늘을 그대로 비추며 잔잔하게 흘렀다. 바람 한 점 없는 늦가을의 오후, 시간조차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계절이 끝자락으로 향하듯, 만추의 공기가 공원 안을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

강둑을 따라 돌아 나오는데, 인도 옆 잔디 사이로 붉은 버섯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잿빛 풍경 속에서 유독 선명한 붉은빛이 시선을 붙잡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둥글고 반짝이는 갓 위에 하얀 점이 고르게 흩어져 있었다. 비에 젖은 풀잎 사이에서 홀로 서 있는 모습은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신비로웠다.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니 그 버섯은 ‘광대버섯(Amanita muscaria)’이었다.

빨간 모자에 흰 점이 박힌 광대버섯.

광대버섯은 둥근 모자처럼 생긴 붉은 갓 아래로 하얀 줄기를 곧게 세우고 있었다.
겉보기엔 귀엽고 아기자기했지만, 그 속에는 신경계에 작용하는 독이 들어 있었다. 그 붉은색은 유혹의 색이자 동시에 경고의 색이었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움이 생존의 전략이 되기도 한다. 장미의 가시처럼, 광대버섯의 독은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자연의 말 없는 경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 연어 떼와 광대버섯을 보면서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많이 느꼈다. 서머타임이 끝나며 시계의 바늘이 되돌아간 것처럼, 나의 마음 또한 제자리로 찾아갈 곳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연어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시간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 ‘되돌림’의 하루 속에서 나는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가까운 강과 길가에서도 충분히 가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11월 2일 새벽, 되돌아간 시간 속에서도 자연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냈다.
그리고 오늘, 나 역시 마음의 시계를 다시 맞춰 본다.


■오마이뉴스 https://omn.kr/2fw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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