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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늦가을날 호수공원에서 만난 구스의 비행

하늘을 가리키던 아내의 손끝, 까마귀 떼인 줄 알았는데 구스였다

by 김종섭

치과 치료를 마치고 근처 호수공원을 걸었다. 진료를 마친 뒤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고, 호수 주변을 걷는 발걸음도 여유로웠다. 산책로에는 가을 햇살이 옅게 비치고, 찬 공기가 볼을 스쳐 따뜻한 햇살이 그리운 오전의 시간이었다. 한참을 호수 주변을 걷고 있을 때, 하늘 위로 까마득히 무언가가 날아가고 있었다.


“저기 봐요, 구스예요.”

아내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순간 하늘을 나는 새가 까마귀 떼인 줄 알았다. 몸집이 워낙 커서 하늘을 나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오리보다 훨씬 크고 묵직해 보였는데, 그 커다란 구스(Goose)들이 질서 정연하게 대형을 이루며 날고 있었다.

호수 위로 질서 정연하게 날아오르는 구스 무리. 선두를 따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캐나다에서는 구스(Canada Goose)를 공원이나 호수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호수나 잔디밭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듯 걷다가, 어느 순간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그 유명한 캐나다 구스 재킷의 보온을 책임지는 깃털도 바로 이 새의 깃털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캐나다 구스’가 되었고, 지금도 캐나다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겨울 패딩 옷 브랜드 중 하나다. 한때 한국에서도 고가의 패딩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곳 캐나다에서는 자연 속 구스와 브랜드 모두 일상처럼 익숙한 풍경이다.


하늘을 나는 구스 무리는 대략 쉰 마리쯤 되어 보였다. 한 마리도 흐트러짐 없이 선두를 따라 올라가더니, 호수공원 주변을 세 바퀴쯤 돌고는 잠시 후 공원 잔디밭 위로 일렬로 내려앉았다.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움직임이 딱 맞았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새삼 놀랐다.

말도, 신호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질서를 지킬 수 있을까. 한 마리가 대열에서 잠깐 벗어나도, 다시 무리 속으로 스르르 날아들며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그 질서 정연한 비행이 어쩐지 사람 사는 세상과 닮아 보였다.

비행을 마치고 호수공원 잔디밭 위로 고요히 내려앉은 구스들.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평화로운 질서를 이루고 있다.


살다 보면 우리도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관계나 단체라는 무리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 그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누군가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따뜻하게 맞아준다. 오늘 본 구스의 날갯짓이 꼭 그랬다.


하늘을 날아오르고, 다시 잔디 위로 내려앉는 구스의 비행은 단순한 새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서로의 리듬을 맞추며 살아가는 생명의 조화로 느껴졌다.


오늘 산책길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구스의 모습을 지켜보는 데 쓰였다. 아내와 나는 구스가 착지하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같은 마음으로 한마디를 했다.

“어쩜 저렇게 질서 있게 날 수 있을까.”


하늘을 나는 구스의 날갯짓은 리듬을 잃지 않았고,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어우러졌다. 오늘 본 그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https://omn.kr/2fx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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