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 포장재 속에서 다시 피어난 생명, 나만의 업
작년 겨울, 베란다에 피어 있던 제라늄의 붉은 꽃에 마음을 빼앗겼다. 추운 계절임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그 모습이 유난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올해는 베란다에 또 다른 꽃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작은 화분에 제라늄을 옮겨 심었더니 의외로 잘 자랐다. 분갈이한 화분과 몇 달 전 사온 화초 몇 개를 거실 햇살이 드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책상 위의 화분은 며칠 전 한인마트에서 배를 사 올 때 사용된 플라스틱 트레이를 여러 개 겹쳐 만든 것이다. 배 트레이 특유의 둥글고 오목한 곡선이 어우러져 독특한 형태를 이뤘고, 두 개를 겹쳐 하나의 원형 화분을 완성했다. 투명한 용기의 질감과 손끝의 정성이 더해져,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핸드메이드 화분이 되었다.
사실 이 트레이는 주방 분리수거함에 버려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로 새로운 화분으로 변신했다. 결과적으로 일종의 업사이클링 (Upcycling) 이라는 가치를 실현한 셈이다.
화분을 만들고 나니 자연스럽게 물받침대가 필요했다. 마침 분리수거함 속에서 흰색 직사각형 플라스틱 트레이가 눈에 띄어 그것을 받침대로 활용했다. 그런데 어딘가 밋밋해 보여 산책길에서 초록빛 이끼를 조금 가져왔다. 흰색 트레이 위에 이끼를 수북이 깔자, 마치 숲 속의 작은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평소에도 마트에서 음식을 사 오거나 배달음식을 먹을 때면, 일회용 용기를 버리기가 늘 아까웠다. 그래서 주방이나 야외용 식기로 재사용하다가 결국 버리곤 했다. 사실 ‘일회용’이라 부르기엔 너무 견고한 재질이 많다. 오히려 주방용 플라스틱 용기와 다를 바가 없다고 늘 생각해 왔다.
이번에는 그런 생각을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것으로 재활용해 보았다. 이전에 과일을 사 올 때 보관해 두었던 핫핑크색 그물망(과일망)과 배를 감싸고 있던 스티로폼 과일 보호망이 그 주인공이다. 책상 위의 다른 화분에도 과일망을 씌워보니, 격자무늬 패턴이 화분에 입체감을 주며 한층 더 흥미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마치 화분이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듯, 겨울을 맞아 따뜻한 외투를 입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화분들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레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난다. 화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잔잔해지고, 베란다 위의 작은 정원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 새로 변신해 있는 책상 위 화분을 사진으로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큰아들이 “이게 뭐야?” 하고 물었고, 아내는 “아빠 취미, 플랜트 가꾸기야”라고 답했다. 아내의 말처럼, 취미는 꼭 특별한 곳에서 찾는 게 아니라 집 안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 집 안의 ‘쓰레기’로 분류될 물건들도 새로운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진 물건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런 작업을 하다 보면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서, 생활 속 취미와 성취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캠페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작은 발견과 즐거운 실천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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