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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아들 집으로 반찬을 배달했다

저녁밥상에서 시작된 길, 아들 집으로 이어진 따뜻한 내리사랑

by 김종섭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늘 마음속 깊숙이 전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진심이 담긴 사랑의 마음이다. 아들이 좋아하던 음식, 그리고 부모님이 즐겨 드시던 음식이 문득 떠오를 때면, 그리움과 함께 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모의 마음까지도 이제는 절절하게 되살아난다. 부모의 식탁에는 언제나 자식이 있었고, 자식을 떠올리며 음식을 먹는 그 마음은 나이 든 지금에는 습관처럼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오늘 저녁, 아내는 고등어조림을 준비했다. 조리할 때 주방에서 풍기는 냄새는 다소 비릿했지만, 그 맛만큼은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이전에 한국 농장에서 사 온 총각김치가 남아 있어 함께 곁들였더니, 입안 가득 한국의 맛이 번졌다. 저녁을 마친 뒤, 아내는 어디론가 통화를 하더니 부지런히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아직 아들이 저녁을 식사 전이라고 하네요.고등어 조림을 좀 가져다줘야겠어요.”


아내는 조림을 먹으며 아들 생각이 밥상 위에 머문 듯했다. 요즘은 해가 짧아져 6시만 되어도 창밖은 어둑어둑하다. 괜히 밤길이 걱정돼 나도 아내와 함께 나서기로 했다.


아들 집까지는 약 27km 거리, 차로 30분 남짓 걸린다. 이웃처럼 오가기엔 조금 먼 거리지만, 부모의 마음이 향하는 길은 언제나 가까운 법이다. 예고된 방문이긴 했지만,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집 앞에서 반찬만 전해주고 오겠다고 통화한 뒤 출발했다. 신혼집에 불쑥 들어가는 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미리 뜻을 전했다.


반찬을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엄마, 오늘 오버타임이라 힘들었는데 얼굴 보니 위로가 됐어요. 고마워요.”


짧은 한 줄이었지만, 그 속엔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혼을 하고 어엿한 어른이 되었어도, 엄마의 손맛과 손길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다. 아내의 존재는 두 아들에게 언제나 인기 있는 엄마다. 오늘은 심지어 아들이 데리고 나온 반려견까지도 아내를 보자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좀 서운하시겠네.”


언제부턴가 가족 안에서도 아내는 늘 중심이었다. 나는 그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조용한 조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특별한 음식을 드실 때면 식사 전 늘 할머니 댁에 반찬을 먼저 갖다 드리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그 모습이 ‘효도’이자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안다. 아버지에게는 자식보다 부모가 먼저였고,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내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실천할 기회도 없이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그 사랑의 방식만은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께는 아버지가 베푸신 그 사랑을 다하지 못해 요즘 부쩍 후회가 많다.


한국의 음식은 손이 많이 가고 냄새도 진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정성과 사랑의 시간이다. 양념을 고르고, 재료를 다듬고, 시간을 들여 끓이는 동안 마음이 함께 들어간다. 그 정성은 단순한 조리 과정을 넘어 ‘마음의 요리’가 된다. 요즘 젊은 세대, 특히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아들 세대에겐 이런 전통의 맛을 지키기 어렵겠지만, 아내는 그런 마음까지 담아 반찬을 싸 들고 간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조건 없는 내리사랑이다. 계획하지 않아도,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감정. 그렇기에 진짜 사랑은 계산이 없고, 오직 따뜻함만 남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운전대를 잡고 아들에게 음식을 전할 수 있을까.” 요즘은 사소한 일에도 언젠가 체력의 한계를 느낄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움직임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힘이 있을 때 사랑도 직접 전할 수 있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길 위에 섰다.


오늘 전한 한 그릇의 음식이 아들 식탁 위에서 따뜻한 저녁이 되었기를 바란다.


■오마이뉴스 https://omn.kr/2fv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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