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몸, 그 안에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루 종일 비가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 나가기 전 잠시 TV채널을 돌려 '유 퀴즈 온 더 블록' 재방송을 보았다. 마침 방송에는 이종격투기 선수 최홍만 씨가 출연해, 자신의 큰 키와 남다른 체격 때문에 겪었던 성장통과 일상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왔다.
특히 신발이나 옷 사이즈를 찾기 어려워 겪었던 고충은 단순히 방송 소재이 보다는 우리 사회의 '표준'이 얼마나 획일적인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재방송을 보다가, 비로 인해 산책을 포기하고 대신 집 앞 쇼핑몰 안을 걷기로 했다. 걷다 보니 어느새 다섯 바퀴째, 만보계에는 6,000보 이상의 걸음이 찍혔다. 비 오는 날 운동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걷기를 끝내고 2층 출입구 쪽으로 나가려는데, 한 매장의 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 전면을 가득 채운 대형 사진 속에는 건강하고 탄탄한 체형의 여성 모델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와, 저렇게 탄탄한 체형도 모델이 될 수 있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아내는 이곳이 플러스 사이즈(Plus Size) 전문 매장이라고 알려주었다.
유리창에는 “CURVY SIZES 10 TO 30”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CURVY(커비)'라는 단어는 낯설었지만,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성 중심의 트렌드를 생각하니 그 뜻이 긍정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른 몸이 아닌, 각자의 몸 선을 존중하는 시대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날씬함’보다 ‘자기 다운 체형’을 사랑하는 분위기로 확실히 달라졌다.
매장의 이름은 Torrid(토리드). 미국의 플러스 사이즈 브랜드로, 일반 매장에서 옷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한다. 이 매장의 쇼윈도를 보면서, 아까 보고 나온 '유 퀴즈 온 더 블록' 최홍만 씨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체격이 작든 크든, 옷가게에서 '나에게 맞는 옷'을 찾지 못해 아쉬웠던 경험은 우리 모두의 '사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불편함이다. 특히 표준적인 규격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그 불편함이 단순히 쇼핑의 문제가 아니다. 나만을 위한 사이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은 마치 '나의 자리가 없다'는 심리적 소외감을 안겨준다. 최홍만 씨처럼 특수한 경우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기성복을 입어 보고 허리나 팔 길이가 맞지 않아 고민했던 우리 모두의 공통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없는 사이즈가 없으면 심리적으로 더 사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오늘 왜 꼭 내 사이즈만 빠져있을까?” 하는 마음은 단순히 쇼핑의 불편함이 아니다. '나도 이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 안에 들어가고, 내 자리가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준을 넘어서고 싶어 하지만, 너무 벗어나면 또 불편해진다. 그래서 평범함에 고마워해야 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평범함을 벗어난 사람을 부러워한다. 결국 그 모순 속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 살아가는 게 어쩌면 우리 삶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비 오는 날 찾은 쇼핑몰 한 의류 매장 앞에 서서 나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과 모든이게 적용되는 기준, 그리고 나답다는 것의 의미를 잠시 곱씹어본 오늘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