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타국 이민자의 부엌에서, 한국 길거리의 호떡을 만들어 보았다
가끔 문득, 추운 겨울 골목 한 모퉁이에서 퍼져오던 호떡 굽는 소리와 달콤한 냄새가 떠오른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코끝을 스치는 찬바람, 그 속에서 피어오르던 호떡 특유의 냄새는 간식 이상의 기억이었다. 호떡은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그 시절 길거리의 상징 같은 간식이었다. 손을 호호 불며 한 입 가져가면 뜨거운 설탕 시럽이 입술 위로 흘러내리던 순간까지도 생생하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 살다 보면, 그때 그 맛이 더욱 간절해진다. 마트에서 웬만한 재료는 구할 수 있지만, ‘그 시절의 맛’만큼은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 며칠 전, 아내가 한인마트에서 호떡 믹스를 사다 놓았다. 오늘,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점심 겸 간식으로 호떡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산책 전 숙성시킨 반죽은 몽글몽글 부풀어 있었고, 손끝으로 살짝 눌러보니 촉촉하게 반죽이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한 주먹 크기로 떼어낸 반죽 속에 흑설탕 두 스푼을 넣고 오므린 뒤, 지글지글 끓는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원반 모양의 누름판으로 꾹 눌렀을 때, 설탕이 녹으며 나는 소리와 달콤한 향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자연스레 따뜻해졌다.
막 구워낸 호떡을 입에 가져가면, 옛날처럼 뜨거운 흑설탕 시럽이 흘러나왔다. 혀를 델까 조심스럽게 호떡을 좌우로 돌리며 식히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달콤한 유혹을 참지 못하고, 결국 뜨거운 걸 감수하며 한 입 먹었다. 호떡은 식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입맛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만든 호떡은 옛날 학교 앞 종이컵에 담아 팔던, 기름 냄새 섞인 그 맛과는 조금 달랐다. 세월이 지나 입맛이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맛의 차이는 장소와 시간의 흐름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손을 호호 불며 나눠 먹던 기억이, 맛보다 더 큰 향수를 불러오기 때문일 것이다. 골목길 호떡집 앞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지금의 맛과 비교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호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옛 기억을 담는 통로였다. 한 입 먹으면 자연스레 친구들, 거리, 그 시간이 떠올랐다. 어릴 적 호떡뿐 아니라 호빵과 붕어빵도 줄 서서 사 먹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나누던 따뜻한 순간과, 호빵 속 어머니의 손길까지, 모두 호떡 냄새와 함께 추억으로 피어올랐다. 그때의 겨울 풍경과 소리, 사람들의 모습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지금은 먼 타국에 살지만, 아내와 함께 호떡을 기름에 눌러가며 만드는 순간이면, 마치 그때 겨울 한복판, 골목가 호떡집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설탕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며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아내와 함께 호떡을 만드는 작은 순간 속에서, 고향의 겨울 풍경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겨울이 오면, 길거리에서 들리던 호떡 굽는 소리와 입술 위로 흘러내리던 달콤함이 떠오른다. 먼 타국 이민자의 부엌이지만, 그 기억만큼은 여전히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의 호떡 한 장이, 추억 속 골목길을 잠시 다시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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