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의 돌솥밥의 맛에는 한국의 온기가 돌솥에 뜨겁게 자리한다
맛을 내는 음식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탕’ 종류는 유독 뜨거움이 생명이다. 불이 조금만 약하거나 강해도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 같은 음식이라도 불을 가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고, 특히 한국 음식은 불과의 관계 속에서 음식의 이름과 맛이 달라지곤 한다.
집에는 뜨겁게 달구어 음식 맛을 살려주는 돌솥이 두 개 있다. 주로 탕이나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돌솥에 비빔밥을 해 먹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돌솥 속 비빔밥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통적이면서 토속향이 풍겨 나는 한 끼로, 나무랄 데 없는 모양새를 완성한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할 때, 잘 챙겨 왔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돌솥이다. 처음엔 ‘이걸 캐나다까지 가져와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다. 한식당이 멀게 느껴지는 날, 집에서 끓여 먹는 한국 음식의 맛은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된다. 돌솥뿐 아니라 함께 들고 온 항아리 역시 지금은 쌀독으로 제 역할을 하며 집안의 작은 공신처럼 자리하고 있다.
돌솥 요리에는 적당한 열 조절이 중요하다. 비빔밥을 거의 다 먹을 즈음 바닥에 살짝 눌어 생기는 누룽지의 은은한 고소함. 숟가락으로 바닥을 ‘그르르’ 긁어내며 먹는 순간은 맛과 행동이 함께 어우러지는 작은 행복이다.
오늘 저녁도 아내가 정성껏 돌솥비빔밥을 해주었다. 돌솥에서 자글자글 끓는 소리만으로도 오감이 먼저 반응한다. 여기에 어묵 국물을 곁들이니 뜨거움과 뜨거움이 만나는 ‘이열치열’의 완성. 뜨거운 돌솥과 따뜻한 국물이 한 상에 놓인 풍경 자체가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듯했다. 마지막에 돌솥 바닥의 누룽지를 긁어먹는 맛은 디저트처럼 입안을 한 번 더 즐겁게 해 준다.
사실 한국에 살 때는 집에서 돌솥밥을 해 먹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집안에 돌솥도 없었고, 돌솥비빔밥은 외식해야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국에서, 식당도 아닌 집에서 돌솥밥을 직접 해 먹으니 더 정겹고, 그리움마저 구수하게 끓어오른다. 돌솥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에는 맛뿐 아니라 마음까지 데워주는 온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돌솥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해외에 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돌솥이나 뚝배기 같은 전통 조리도구는 ‘번거롭다’는 이유로 가정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전기밥솥은 더 편리하고, 기능 좋은 냄비 하나면 대부분의 요리가 해결되는 시대다. 그래서 돌솥은 어느새 ‘특별한 날’, 혹은 ‘외식’의 상징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돌솥을 꺼내 밥을 짓는 풍경은 한국에서도 이제 흔치 않은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오늘 돌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먹다 보니, 맛보다 기분이 먼저 앞섰다. 나만 느끼는 향수라 생각했는데, 돌솥을 둘러싼 그리움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공감할 만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멀어진 것, 여전히 우리 안에 있지만 쉽게 꺼내지 않는 어떤 정서가 돌솥 속에서 다시 뜨겁게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냄비를 직접 달구고, 밥이 눌지 않도록 시간을 맞춰가며 마지막 누룽지까지 긁어먹는 과정은 어쩌면 불편함이 아니라 ‘손이 가는 만큼 마음이 가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그 번거로움을 기꺼이 품을 때 인정되는 정성, 그리고 그 정성이 만들어내는 맛까지도 함께 떠오른다.
요즘은 해외에서도 한국의 향수를 재현하는 일들이 즐겁다. 이민을 오면서 내려놓았던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 식재료나 생활용품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다. 예전처럼 한국에 가야만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해외에서도 자연스럽게 누린다.
오늘 저녁, 돌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정서적인 맛에 잠시 머문다. 단순히 식당에서 먹던 한 끼의 돌솥밥이 아니라, 이민자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따뜻한 기억을 불러내는 ‘집밥의 걸작품’ 같은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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