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아크릴 속 작은 금관, 중고매장에서 이민자의 눈에 비친 문화의 자리
요즘은 비와의 시간을 오래 보내고 있다. 갠 날보다 비 오는 날의 횟수가 더 많아진 지는 이미 꽤 오래다. 오늘도 아침부터 잔잔한 비가 내려 산책을 포기하고, 대신 근처 중고매장으로 향했다. 비 오는 날의 중고매장은 괜히 더 아늑하다. 사람들 틈을 천천히 지나며 사람 구경도 하고, 오래된 물건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쓸데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진열대 끝에서 투명한 아크릴을 부어 굳힌 사각형 틀 속에 작은 금관 두 점이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작은 신라 금관을 본떠 넣은 장식품이 그 안에 ‘아주 아름답게’ 잠겨 있었다. 기념품 형식으로 만든 장식물임이 분명한데, 순간적으로 한국 금관 특유의 정교함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아크릴 틀 안에 끼워 넣은 방식이 아니라, 액체 아크릴을 금관 위에 그대로 부어 굳힌 ‘임베딩’ 방식이라 그런지 금관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걸 누가 여기까지 가져왔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금관 아래에는 ‘한국국제문화협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디자인이다.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디자인이다. 그때는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품 중 하나라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중고매장에 오면 언제나 그렇다. 마음에 들어 손이 멈추는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이 이곳까지 흘러온 이유와 여정을 상상하게 된다. 물건 자체보다도 그 물건이 걸어온 길이 더 흥미롭다는 것, 그것이 중고매장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중고물품은 결국 ‘과거의 흔적’이다. 누군가의 집 선반이나 책상 한쪽에서 몇 해를 보내고, 또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어쩌다 이 먼 캐나다 도시까지 왔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 눈앞 진열대에서 또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서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은 금관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조용한 여행자처럼 보였다.
얼마 전,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순금으로 제작된 근사한 작품이 세계의 시선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반면 오늘 내가 본 금관은 액체 아크릴 속에 작은 모습으로 박제되듯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는 세계의 중심으로 향했고, 하나는 중고매장을 돌아다니다 나에게 우연히 발견되었다. 두 금관의 길이 너무 달라 오히려 묘한 재미가 있었다.
어젯밤 우연히 ‘진품명품’을 보며 해외에서 들여온 공예품의 사연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 이 작은 금관도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손에서 사랑받던 물건이었어.”
아크릴 속 금빛 장식은 과하게 번쩍이지 않고 은근하게 빛났다. 오래된 물건의 정취와 장식품 특유의 단단함이 조용히 어우러져 있었다.
결국 사지 않고 돌아섰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에 이상하게도 계속 떠올랐다. 중고매장이라는 곳은 원래 그렇다. 살까 망설이다가 돌아온 물건이 오히려 더 마음에 남는, 참 이상한 공간이다.
오늘은 그 신라 금관이 내 하루에 작은 점 하나를 찍고 간 셈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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