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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마트에서 벌어진 K-푸드의 딜레마

캐나다 거대 유통 기업의 퓨전 '불고기 롤'과 한국 음식 정체성

by 김종섭

오후 산책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집 근처 캐나다 대형 마트인 슈퍼스토어에 송이버섯을 사러 들렀다. 송이를 사고 나오려는데, 통로 중앙에서 김밥 시식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식 코너 직원은 이 제품을 치킨 불고기가 들어 있는 마키(Hot MAKI Chicken Bulgogi)라고 소개했다. 불고기는 분명 한국 음식이지만, 제품명은 ‘핫 마키(Hot MAKI)’라고 되어 있었다. 마키는 일본식 롤을 뜻하는 말로, 김밥과 비슷해 보이지만 구성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오늘 시식 제품은 겉면을 김으로 감싼 전형적인 김밥 형태였다.

이 제품은 캐나다 회사인 로블로 컴퍼니스(Loblaws Companies Limited)의 상품이었다. 로블로는 한국의 불고기와 일본의 롤 문화를 결합해 퓨전 제품을 개발한 것으로 보였다. 즉, 한국의 ‘불고기’와 일본식 ‘롤’ 요소를 조합했지만 실제 형태는 김밥이었기에 제품명의 선택은 아쉬웠다.

사실 미국 전역에서 냉동 김밥이 큰 인기를 끌며 캐나다 코스트코까지 상륙하여 현장에서 한국 냉동 김밥을 봤을 때 K-푸드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오늘 시식코너에서 김밥이 아닌 '핫 마키'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밀려나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 음식인 김밥 형태임에도 일본식 ‘마키’라는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불고기가 들어갔다면 ‘불고기 김밥’이 더 자연스러운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캐나다에는 스시집이 많이 있다. 그곳에는 다양한 롤(마키)을 경험할 수 있다. 롤 자체는 김밥과는 형태가 다르다. 일본 롤은 밥이 겉으로 드러나고, 김밥은 김이 바깥을 감싸는 방식이 가장 큰 차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외형을 넘어 두 나라의 음식 문화가 반영된 고유한 특징이다.

오늘 시식한 '핫 마키' 역시 속 재료는 불고기였지만, 모양은 완전히 김밥이었다. 형태는 분명 김밥인데도 ‘마키’라는 이름을 사용한 점이 제품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롤보다 김밥을 더 좋아한다. 예전에는 스시 롤을 즐겨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입맛이 받지 않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나는 김밥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들어 먹고,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 김밥 두 줄을 싸 먹었다. 김밥은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그래서 오늘 제품 역시 더더욱 ‘김밥’이라고 이름이길 바랐다.

집에서 김밥을 싸는 일은 언제부턴가 나의 몫이 되었다. 산책 갈 때도 싸 가지고 가고, 아들과 며느리 여행길에도 직접 싸주곤 했다. 그런 내가 일본어 이름이 붙은 이 제품을 보니, 더 민감하게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음식과 오래 함께할수록 이름 하나가 전하는 정체성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시식 코너 직원에게 김밥이 올려진 모습을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앞에 있는 상품 박스를 찍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시식 담당 직원은 중동계 이민자로 보였다. 내가 김밥 자체를 찍고 싶다고 하자 이유를 물었고, 그때 아내가 상품에 대한 글을 쓰려한다고 하니 허락하여 주었다. 사진 한 장을 두고도 서로의 문화 이해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했다.

일단 사진을 찍고 ‘마키’라는 이름의 김밥을 먹어보았다. 불고기와 치킨만 들어 있어 한국식 김밥의 기본 구성인 우엉·단무지·지단 같은 맛의 균형은 없었다. 한국인 입맛에서는 다소 단조롭게 느껴졌지만, 현지 소비자에게는 익숙한 조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푸드를 의식해 만든 제품일 수도 있는 생각이 든다. 제품명에 ‘마키’를 사용한 점은 캐나다 회사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아쉬운 선택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최소한 치킨 불고기 김밥 (Chicken Bulgogi Kimbap) 정도의 표기였다면 음식의 정체성이 더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세계 곳곳에서 K-푸드가 주목받는 지금, 이름은 정체성을 시작하는 첫 단추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김밥을 김밥이라고 부를 때, 비로소 한국 음식의 이미지가 제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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