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에서부터 아내의 도시락까지

by 김종섭

학교 등교 때마다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대가 있었다. 교복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언제부턴가 교복이 부활이 되었지만 그때는 늘 교복 이외에는 자율복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와는 달리 학창 시절 내내 어떤 반찬을 싸갈까 고민해야 했던 시절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반찬을 선택할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맛있고 영양식이기보다는 먹고 배부르면 그만인 시대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쌀 생산량이 부족했던 시대는 혼식 [混食]으로 도시락 속을 채워야 했던 배고픈 시절이었다. 지금에 혼식은 건강식으로 각광받았지만 그때는 쌀이 아니 잡곡은 배고픈 가난의 전유물과 같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시대적 먹거리에 오류였다.


도시락은 어머니의 정성이기도 했지만 빈부의 차를 가늠하는 지표와도 같았다.

겨우 계란 프라이쯤의 반찬임에도 진수성찬쯤으로 부러워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이 끝남과 동시에 도시락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도시락 대신 출근길은 잡다한 일용품을 담을 수 있는 가방으로 손에 쥐어졌다.

소속이 일정치 않은 노동자들에게는 장소에 구분없이 앉을 공간만 있으면 싸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공장 지붕 보수중인 노동자들 펜스 (Fence)사이로 촬영

웬만한 회사는 구내식당이 있고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일 경우는 대부분 외부 식당을 찾는 것이 낯설지 않은 자연스러운 점심시간 풍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출근길 손에는 도시락이 들려져 있다. 아내는 평상시 아침 출근길 배웅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수고스러움과 동시에 번거로움이 생겨났다. 새로운 환경에서 도시락을 싸야 하는 일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회사 인근에 식당이 많을 텐데 요즘 시대에 웬 도시락이 필요하겠는가, 누군가 성급한 반문을 던질 법도 하다.


한국이 아닌 지금 머물고 있는 캐나다 이야기이다. 대부분 직장이 도시락을 지참해야 한다. 주변에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쉽게 찾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30분이라는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외부 식당을 활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직장인들에게는 그날그날 점심 메뉴 고르는 일이 쉽지 않은 곤혹스러운 일이라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현실의 호사스러운 일도 마다하고 메뉴를 고르지 않아도 되는 합창 시절 도시락의 추억을 되새김질했던 간사함도 있었다.


지금 난 시대를 반전해 나가고 있다. 예전 합창 시절 도시락의 추억보다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 한 끼 무엇으로 때울까 고민했던 그 시절이 다시 추억 한가운데 부러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 했다. 다시 오지 못할 것들에 대한 기억들이 좋든 싫든 웬만하면 아름다움으로 간직하려는 것은 반란의 추억일지도 모른다.


삶에 있어 먹는 즐거움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고 한다. 한때는 달나라에 착륙한 우주인들이 식사 대용으로 복용한 캡슐 부러워했던 때도 있었다. 먹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싶었던 얄팍한 삶 속에 호사였을지도 모른다.


휴일의 시간이 끝나갈 시간쯤 아내는 마트를 가기 위해 외출을 서두른다. 내일 출근에 싸갈 도시락 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추억의 도시락으로 자리 잡아가지 않겠는가 잠시 옛 기억 속을 되돌아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