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식은 고유함과 정적임이 담겨있다. 한식은 탕과 찌개 그리고 부침이 우리의 음식문화의 주류를 가지고 간다.
각국의 음식은 익숙하지 않은 짙은 향신료와 짜고 매운 식탁문화의 정서적인 차이가있다.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아직껏 먹어보지 못한 각국의 음식을 경험하는 미식가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이로 인해 국경 구분 없이 음식문화 공유가 활발 해지면서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빈대떡보다는 피자가 익숙한 시대를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되었다.
피자와 햄버거는 어린이들까지도 생일파티에서 빠져서는 안 될 단골 메뉴로 사랑을 받고 있다. 생일상에 빈대떡을 올려놓았다고 생각을 해보자. 왠지 생일상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 반응이 주어진다. 어쩌면 촌스럽고 투박해 보일 것이라는 시각적 느낌까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우리의 전통음식은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떡도 예외는 아니다.기념비적인 생일과 잔치상까지도 의례히 떡 대신에 케이크가 어울리는 시대를 맞이 했다.
대중 속에 빈대떡에 막걸리가 통하던 시대를 떠난 지 오래되었다. 가끔은 별식의 안주이고 술일 지도 모른다. 그나마 중장년 층간에는 옛 추억의 향수가 짙게 자리 잡고 있어 옛 향수가 느껴가곤 할 때 막걸리와 빈대떡 의식에 머물곤한다.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가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왜 맞을까 ♧♧__♧♧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빈대떡 신사 노랫말 일부분이다)
노랫말에서 느끼듯이 빈대떡은 서민적이고도 평범한 음식이었다
빈대떡은 어떤 유래가 되어 토속 음식으로 아직도 우리 곁에 음식의 가치를 재연하려 하는 것일까,"빈대떡’이라는 말의 유래를 찾아보니 숱한 사연이 담겨 전해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덕수궁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정동이 예전에는 빈대가 많아 빈대 골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곳 사람 중에 부침개 장수가 많아 이름이 빈대떡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빈자(貧者)들이 먹는 떡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불러지는 이름도 다양하다. 부침개. 녹두빈대떡. 김치빈대떡, 파전, 첨가물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옛날에 가족행사가 있을 때 고을은 기름내가 풍겨야 잔치 기분이 날만큼 과거의 마을 풍경이있었다. 식용유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 식용유를 대신해 돼지 비개 살을 이용해서 부침을 하기도 했다. 우리 전통 음식은 전체적으로 기름진 중국 음식과는 달리 정갈하고도 감칠맛이 나고은은하다. 또한 지방 특색이 담긴 향토 음식까지도 공유한다.
과거 우리의 식탁은 다양한 음식보다는김치찌개와 기름에 튀겨낸 부침이합세하여 서민적인 밥상으로 오랜 기간 머물러 왔던 시대가 있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전통음식을 만들어 식탁에 올릴 만큼 시간과 정성을 소비하지 않았다. 문 밖에만 나서면 전통음식 전문 식당을 흔하게 찾아볼 수가 있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일 수 도 있다.
1997년 가족과 함께 잠시 유학길에 올랐던 시기가 있었다. 전제층이 3층이 전부인 아파트 1층을선택해서 살게 되었다. 옆집은 샌디라는 이름을 가진 80세가 훨씬 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베란다와베란다 사이에 영역 표시 정도의나지막한 팬스 벽이전부였다. 때문에 옆집과의소통의 시간이 많았다. 샌디 할아버지는 애들을 무척이나 이뻐해 주셨다. 집안 가득 취미로 하고 있는 골동품과 모형 비행기로 발 디딜 틈 없다 보니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항상 베란다에서 일상을 보내셨다.
어느 날 샌디가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피자 한판을 사 가지고 오셨다. 한국 정서상 받아먹으면 빈 접시에 무엇이라도 담아 보내는 정성이예의라는 사고를 가지고 살고 있을 때이다.
아내는 맵지 않게 특별히 신경 써서 먹음직스럽게 누렇게 잘 익은 빈대떡을 갔다 드렸다. 피자와모양새는 비슷한데 냄새부터가 다른 빈대떡이샌디 눈에는 신기했었던 것 같다. 포크도 사용하지 않고 한 조각을 손으로 잡아 거침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제임스 코리아 피자 베리베리 굿!!"그는 빈대떡을 코리아 피자라고 명명했다. 먹는 도중에도 엄지 척하면서 밝게 웃으신다. 정말 맛은 있었을까. 혹시 인사성에 불과한 몸짓은 아니었을까, 걱정스러움과 궁금증이 뒤섞인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다. 샌디는 코리아 피자맛에 매료가 된 듯하다. 피자 한판을 사들고 오셔서 코리아 피자를 주문하신다. 그때서야 그가 빈대떡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 진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에는 빈대떡을 찾지 않지만 비 오는 날에는 가끔 동동주와 빈대떡이 떠올라 시장을찾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옛것을 지켜가는 서민 정서이자 국민정서일지도 모른다. 술 한잔의 취기가 샌디 할아버지의 기억을 찾게 된다. 20년이 훌쩍 지나쳐 온 세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 확실하다는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전통음식 하나만으로도 국경을 너머 각기 다른 인종의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수호신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