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노잣돈

할머니의 용돈은 힘이 존재한다

by 김종섭

노인분들이 받고 싶은 부동의 선물 1위는 돈이 아닐까 싶다. 돈이 있어야 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돈이라 함은 비단 노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별도로 구분의 차이가 없다. 돈이라는 것은 묘하게도 유동성 있고 편한 물건이다. 특별히 노인분들에게는 쓸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힘이 되어가는 돈의 법칙을 일찍이 알고 계셨다. 결국엔 돈의 속성은 원칙보다는 다양성이 있어 늘 한 곳에 머물거나 기다려 주는 법이 없다. 늘 돈의 위주로 변신해 가는 신비 주의가 작용했다.

할머니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힘겹게 벽면에 몸을 기대어 잠시 잠깐 앉아 계시는 일이 하루 중 제일 유일한 낙이셨다. 지병이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니 가까운 친인척이 가끔 인사차 병문안을 오셨다.

"할머니 뭐 드시고 싶으신 것은 없으세요"

병문안을 오시는 손님들마다 의례적으로 할머니에게 여쭈어 보는 이야기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려 해도 당최 입맛이 없어서...."

할머니는 입맛 없다는 말씀을 습관처럼 달고 사셨다.

"이제 그만 일어나셔서 걸으셔야지요?"

"글쎄!! 걷기만 해도 소원이 없겠어"

희망 없는 소리인지를 알면서도 할머니는 혹시나 하는 가능성 없는 소망이나마 기대하고 계신 것 같았다.

병문안을 오시는 대부분 분들은 먹을 것보다는 용돈을 드리고 가시는 경우가 많으셨다.

"할머니 맛있는 것 드시고 싶으실 때 사드세요"

대부분 할머니가 맛있는 것 사드시는데 쓰이는 용도로 용돈을 주시고 가셨다. 용돈을 받자마자 손의 움직임이 빨라지셨다. 돈의 힘이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용돈을 재빨리 이부자리 밑으로 깊숙이 밀어 넣으시고 흐뭇해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이셨다. 그때는 어린 맘에 이불속에 숨겨 놓는 용돈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었다.


어느 겨울날 그해는 지독히 추웠다. 할머니는 지독히 오랜 기간 지병과 고독한 사투를 벌이시다가 끝내 이겨내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가셨다.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이부자리에는 할머니의 신음소리와 함께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불을 걷어내는 순간 긴 투병의 세월만큼이나 지인들이 건네주신 애정 어린 마음의 용돈이 이부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휴지 조각처럼 꼬깃꼬깃하게 구겨져 헝클어져 있던 용돈이 다시 바깥세상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20년전 화폐의 가치로 용돈 이미지 구성

할머니의 용돈이 이불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갈 때마다 살고자 하는 삶의 애착이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우리 삶 속에 결탁되어 있는 돈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벌기 무섭게 쓰기에 바쁘다. 돈을 익숙하게 써본 사람만이 돈의 쓰임새를 안다는 돈의 또 다른 철학이 있다.

또 하나의 유형은 죽어라 하고 벌기만 하고 쓸 줄 모른다. 돈을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껴가고 힘이 되어가는 유형이다. 이처럼 서로 전혀 다른 대립적 관계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의 용돈도 전자 두 번째의 예시와 같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용돈은 용도의 가치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가 가시는 길에 삼베 수의 옷을 단정하게 입혀 드리고 큰 아버님은 할머니가 남겨 놓고 가신 용돈 일부를 저승 가실 노잣돈이라고 삼베옷 주머니에 정성스럽게 넣아 드렸다.


할머니가 삼베 주머니에 가지고 가신 노잣돈이 이승의 돈에 가치를 잃지 않고 저승에서 값지게 쓰였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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