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살 되던 가을 나는 죽음을 경험했다.고속도로 위에서 내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면 아찔하다. 생각은 오래 머물지 않고 망각이 되어 다행이었다.
그때는 비교적 지방 출장이 잦았던 시기였다. 그날도 안동 출장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향해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휴식 없이 곧바로 출발한 상태이다 보니 졸음이 엄수해 오기 시작했다. 때 마침 전방에 치악산 휴게소가멀지 않았다는 안내표지판이 보였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잔으로 졸음을 쫓고 다시 휴게소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순간, 멀리서 달려오는 차량 한 대가 수차례 다급하게 쌍 라이트와 경적을 울리면서 진입을 방해하고 나섰다. 주행선 진입 거리 확보가 충분하다는 판단을 가지고 고속도로 진입을 강행했다. 백미러로 뒤쫓아 오는 뒤차의 동태를 살폈다. 주행선을 넘어 추월선으로 숨 가쁘게 달려오고 있었다. 잠시 정면을 주시하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차는 이미 급커브길을 달리고 있었다. 황급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사력을 다해 밟아 보았지만 속도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는 뱀 사 (巳) 자 모양을 그려 가면서 터널 안으로 진입해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요동치는 차의 운전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운전대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결국은 이렇게 죽는구나"
짧은 몇 초 동안 생각의 전부였다.
차는 터널 내벽을 들이박고 조수석 쪽으로 한 바퀴 빠르게 회전하면서 2차선에 멈추어 섰다.
상황이 그쯤 되고 보면 기절 정도는 했어야 정상인데 살아야겠다는 굳은 진념이남아 있었던 것 같다. 주저 없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뒤쫓아 오던 차가 없어 대형 사고는 피해 갈 수가 있었다. 우선 고속도로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재빠르게 2차 사고 방지책을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에 놓여있었다. 사고 차량 뒤쪽에 바짝 붙어 미친 듯 정신없이 달려오는 차를 향해 열심히 손을흔들어감속 운행 수신호를 보냈다,상황을 인지 하지 못한 어떤 운전자는 사고 차량과 거리 간격을 두고 수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지나갔다.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사고 차량에서 탈출한 운전자의 다급했던 상황을 읽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교통사고 신고를 해야 하는데 머릿속은 이미 멘붕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순간 직원 단축 전화번호가 생각이 났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까?"
직원은 다짜고짜 교통사고라는 말에 잠시 어리둥절한 듯했다.
"119로 신고하시면 되는데 혹시 부장님 교통사고라도 나신 거예요"
누구나 기본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119를 순간 당황한 나머지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몇 분 후 소방차와 견인차까지 도착을 했다.
"선생님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계신다는 것이 천운이십니다"
교통사고 환자라고 인정하기엔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이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시고요? 외상도 육안으로 봐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시기는 한데 그래도 이 정도 충격이면 일단은 병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은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한다.
"어제도 바로 이 장소에서 초등학교 여교사 되시는 분이 즉사[卽死]를 하셨어요"
"참 운명이라는 것이...."
소방관이 어제 있었던 사고 상황을 설명하다 말고 고개를 떨군다.
"어찌 되었든 천운입니다. 선생님은 오래 사시겠네요"
견인차로 사고 차량을 견인하고 남원주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마침 원주에 출장 나와 있던 직원과 연락이 닿아 직원 차를 타고 집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고 특별한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좀 더 정확한 정밀 검사를 원하시면 내일 내원을 하면 될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이 오늘따라 한없이 넓어만 보인다.
캐나다에 유학 중인 가족에게 차마 교통사고 소식을 알리지는 못하고 인천에 계신 누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교통사고 상황에 대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자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병원에 입원도 하지 않고 집으로 귀가를 했냐고 노발대발이다.
더구나 가족도 없는데 무모한 행동을 한다고강한 질타가 주어졌다. 일단 오늘 중으로 병원에 입원하겠다고 누님을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서럽게 많은 시간 동안 울어 본 날로 기억이 된다. 누나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자다가 갑자기 진통이라도 느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잠이 들고나면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의심했다. 창가에 영롱한 햇살이 아침 창가에 와 닿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또 한 번 죽음을 비켜난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나도 모르게 믿지도 않는 하느님을 외치고 있었다. 48세, 나는 은근히 다가올 49세의 아홉수를 미리부터 걱정하곤 했었다. 그렇다면 미리 앞당겨 49세의 아홉수를 교통사고로 액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49살이 되던 해를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했다.
그 후로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마음 가짐은 아직껏 망각의 시간으로 보내왔다. 2번의 삶을 살고 있으니 주위에서는 오래 살 것이라고 말들을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참으로 미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