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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May 18. 2021

 97만 원을 물놀이 대가로 호수에 지불했다

휴가철에 생긴 일

20년 전의 일이다. 같은 고향 마을 초등학교 동창생들모처럼 가족단위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각자 집에서 출발하여 목적지가 있는 청평호에 결하기로 하였다. 우리 가족은 고속도로가 아닌 다소 한가한 통행량이 있는 국도를 이용하여 가기로 결정했다. 이른 아침 출발이라 국도변에 있는 휴게소에 들러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최종 집결지인 청평호에 이미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전에 도착해 있었다.


집결장소에 미리 도착한 가족 순으로 호수  건너편 쪽에 있는 모래밭 백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가기로 했다. 동력 보트에 각자 준비해온 음식물과 피서용품을 싣고 여자들 우선으로 보트에 올라탔다. 나머지 인원은 동력 보트 후미 축에 매달아 놓은 바나나 보트에 올라탔다.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만큼이나 호수를 헤쳐 나가는 속도 또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몸을 가볍게 보트 위에 내려놓고 호수의 정취를 느껴가려는 순간 바나나 보트가 갑자기 회전에 중심을 잃고 뒤집어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바나나 보트에 타고 있던 모두가 물속에 빠져 허우적 되는 모습은 마치 배의 침몰 상황과 같았다. 다행히 구명 조키를 입은 탓에 수면 위로 떠올라 다시 보트에 올라타기는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놀랜 모습이다. 보통 바나나 보트를 타고난 후에 의례적으로 신고식과 같은 의미를 가진 일종의 바나나 보트 놀이 문화라고 한다. 아쉬운 것은 사전에 말미라도 주었다면 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내내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멍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바나나 보트에 올라탔다. 있어야 할 것들이 내 몸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벗겨져 내려갔다. 선글라스는 물론이고 신고 있던 샌들까지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물속에 빠져 들었다. 다행히 쓰고 있던 모자를 수면 위에서  발견했다. 손을 뻗는 짧은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고 야속하게 모자 역시도 내 손과 몸에서 떠나 버렸버렸다. 호수 주변 10m 남짓한 물 위에 수십 장의 만 원권 지폐가 떠있는 형체를 발견했다. "아! 내 돈이다" 순간 당황한 첫마디이다. 뒷주머니를 더듬어 보았다. 주머니에 있어야 할 돈이 단 한 장도 없었다. 물속의 부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 주머니에 있던 돈뭉치가 한꺼번에 물속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일부의 돈은 그나마 수면 위에  떠 있어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 시간마저도 인내가 부족했을까, 물기를 머금은 돈은 끝내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돈마저도 결국은 물속에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친구 한 명이 뒤쫓아 타고 오던 제트 스키를 바꾸어 타고 호수 주변 여기저기 돌아보았지만 돈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청평호는 호수라기보다는 워낙 큰 바다 모양을 닮았다. 광대하게 넓은 물속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돈을 회수할 묘책이 생겨나지 않아 포기 선언을 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돈은 종이와 같아서 물 위에 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그 믿음 하나로 돈의 행방을 쫓았지만 물속에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순간 돈 찾는 것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았다.


집을 출발하기 전에 만 원권 백장을 뒷주머니에 지갑과 별도로 챙겨 넣었다. 휴가철에 가족을 위해 쓰려고 모아두었던 돈이다. 일종의 비자금이기보다는 공개된 곳에 쓰려했으니 저축해 두었던 돈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휴게소를 들러 아침식사비 3만 원을 계산하고 남은 돈 97만 원을 고스란히 호수가 삼켜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휴가를 위해 아내가 새롭게 준비한 선글라스와 모자까지 호수에 재물이 되고 말았다.


20년 전에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이 15만  정도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쌀 한 가마니 가격은 대충 22만 원가량 한다. 물가 상승률이  가격으로 비교했을 경우 대략 47프로가량 상승률을 보인다. 그렇다면 그때의 백만 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환산해 보면 지금에 대략 147만 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  돈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는 카드 사용보다는 현금 사용이 익숙했편했다. 대부분 가맹주 업주들은 카드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현금을 원했던 시대라 대부분 현금 위주로 사용을 했다.

 

물론 많은 현금을 챙겨 간 것이 일차적인 실수이기도 하고 미리 귀중품을 차 트렁크에 챙겨 가면서도 돈만큼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아일한 생각을 가지고 바나나 보트에 올라탔던 것이 2차적인 실수이기도 하다. 


모처럼의 가족 단위 휴가가 개인의 부주의로 잃어버린 돈을 연관시켜 친구들과 가족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어야 하는 순간에 웃고 있어야 하는 심정은 사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평정심을 얻어가려고 노력한 대가는 1박 2일간의 짧은  휴가였지만 모두가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 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돈을 잃어버린 친구를 위해 회비를 면제까지는  아닐지라도 감면 정도 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생각에 조금은 실망스러운 흠집이  생겨났다.


휴가 기간 동안에 친구 가족들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다. 휴가지에서의 사진 전부를 초등 동창 카페에 올려놓다. 나는 그 당시에 동창 카페 운영자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의 가족사진과 아내의 모습이 담겨 있는 단체 사진을 동창 카페에서 내려 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친구 아내는 그 당시에 유방암이었다. 휴가 떠나기 몇 달 전에 수술을 받은 건강한 모습으로 휴가지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은 뇌까지 전이가 되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 단 하루 밤을 보내고 그해 새벽에 친구의 아내는 세상과 이별을 했다.


그해 휴가는 그렇게 많은 사연을 달고 사실 끝나버렸다.


무더운 여름 날씨 거의 대다수 사람들은  휴가를 떠난다. 지금의 상황은 모든 것이 코로나로 인해 멈추어 서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불과 일 년 전 모든 세상의 움직임을 가치 있게 그리워하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모르고 살아온 세상, 다시 자유로움을 맞이할 세상이 온다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벌써부터 얼마 남지 아니한 여름 휴가지에서의 멋진 추억의  상상까지도 오늘 이 시간에 희망으로 품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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