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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ug 14. 2021

동서가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퇴직과 은퇴의 기로에 서다 보면 이미 노인이 되어 있었다.

동서 내외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밴쿠버에 도착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거의 3년 만에 재회인 듯싶다. 항상 세월이 빠르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오늘따라 새삼 시간 흐름의 속도가 빠르다는 실감하게 된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3년이라는 시간도 숨을 고를 여유 조차 느껴보지 못하고 단숨에 그 많은 시간을 떠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난 세월만큼이나 저녁 밥상은 진수성찬이다. 

"형님! 우리가 마주 앉아 술 한잔 마시는 일이 얼마 만입니까, "

우리는 그렇게 오랜만에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은  한잔만 들어가 몸이 예전 같지 않고 힘이 들어"  

건배를 제의가 끝난 후 동서의 첫마디다.


동서 나이 올해로 65세를 맞이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예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쯤 동서는 결국 세월을 비켜가질 못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현실성 있게 다가서는 순간이다. 이제 중년이라는 호칭이 수명주기를 벗어났다 할지라도 한 번쯤은 아량을 가지고 중년으로 봐줄 만도 한데 세월의 정직함은 노인이라는 호칭을 비켜갈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만 하더라도 일상의 평범한 날에도 우리는 밤새 술을 마시고 그것도 모자라 먹잇감을 사냥하듯 서울 한 도심의 복판을 휘젓고 밤거리를 배회했던 날도 가끔은 있었다. 밤새 마신 숙취를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 해장국으로 서로의 속을 위로했던 풍경도 이미 떠나버린 지 오래되었다.


동서는 이번 밴쿠버에서의 여름휴가가 끝나고 나면 다니던 직장을 퇴직과 동시에 은퇴(Retire)까지도 준비한다고 한다. 퇴직과 은퇴가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퇴직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라면, 은퇴는 나이가 들고 체력 약화로 더 이상 소득과 관련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의식 정도로 봐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이웃집 아저씨가 직장을 퇴직한다던가 아니면 새로운 직장을 얻어내지 못해 은퇴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때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나이가 먹으면 찾아오는 일상적인 과정 중 하나일 것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흘려보냈다. 그때는 당연히 나와는 상관없는 머나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또한 지배적이었다.


 나이를 먹고 은퇴를 하고 노인이 되는 일은 별도의 자격심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를 위한 예외 규정이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발버둥 치고 몸부림쳐도 세월 속에 별도의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운명처럼 찾아온 나이가 되면 우리를 노인이라고 불러주기 시작한다는 것에 차츰 주목하기 시작했다.


천년만년 는 것도 아닌데 뒤돌아 서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인생을 살아왔다. 삶의 부질없는 허용심을 까지 움켜쥐고 살다 보니 언제부턴가 비로소 버려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닌 것들을 버리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뒤돌아서면  습관처럼 망각하는 시간을 보내어 왔다. 세상에는 움켜쥐고 사는 일은 익숙했고, 버리는 일과 비우는 일에 인색함이 익숙함으로 길들여졌다.


우리는 때가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노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하고 살아갔다. 어리석음 이기전에 가는 세월과 어느 정도 타협을 거부하고 싶은 이기심이 살아가는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의 무게가 진통으로 다가선다.  5분의 유혹이 몸을 추스르는 일에 장애요소가 되어갔다. 힘들게 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나이 탓만 늘어놓는다. 나도 늙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 맞다. 때론 나이 들어감을 인정하면서도 지독히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마음은 늘 고독했다. 그래서 나이가 먹어갈수록 고독한 것일까, 오늘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에 위해 서로가 나누어 갈 수 있는  실만으로도 지금의 내 젊은 날이 아닐까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 진리인셈이다.


오늘도 오후의 시간으로 깊숙이 내려앉는다. 하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의 방향이 우회한다. 아직 남은 오늘이 멀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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