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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Oct 19. 2021

백세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

삶의 욕망도 욕심일까,

누구나 오래 살기를 삶에 최우선 과제로 품어갈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 삶의 틈바구니에 꽁꽁 숨겨 놓았 수명 연장의 봉인풀리면서 백세 인생은 급 물살을 탔다.


백세 인생에 근접한 초고령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수명 연장을 뒷받침하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가 생활수준 향상이다. 두 번째로 식생활 개선을 들 수 있다. 식생활은 먹고 배부른 의식이 아닌 건강식 위주로 개선되어 갔다. 세 번째는 인체의 비밀을 풀어가는 의학 발달의 공로가 일조를 했다. 결국은 오늘날 인류가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확률이 현실적으로 크게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수명 연장은 일류 모두의 소망이었고 인에게는 축복이었다. 이러한 축복을 지켜가기 위해 백세로 가는 인생길은 커다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수명 연장은 이미 이전의 삶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변화를 빠르게 흡수해 가고 있다. 젊은 층에게는 해가 거듭날수록 결혼이 늦어져 갔다. 또한, 늦어진 결혼과 맞물려 출산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뿐만 아니라 신의 영역처럼 중요시했던 출산 제도도 과거와 다른 현상을 가지고 왔다. 가정 내 경제적인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집을 장만해야 하는 나이가 늦추어져 갔다. 물론 부동산 폭등이라는 사회적인 문제점도 한몫을 했다. 수명 연장에서 역행되어가는 것도 있었다. 늦추어져야 할 은퇴시기가 갈수록 빨라지는 기형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수명 연장으로 인해 사회는 크고 작음의 구분 없이 사소하고도 경미 부분까지 변해갔다. 환갑. 칠순 팔순이라는 기념비적인 날도 언제부턴가 기억을 막아 놓았다. 그들은 대신 예전과 달리 한층 더 젊어진 세대의 신체 조건을 내세워 노익장을 과시했다.


가부장적 제도하에 자식이 부모를 지극정성 섬겨오던 옛날의 효자. 효부가 아직까지도 존재는 하고 있으나 긴 병에 효자 없다는 현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죽어야지 "

습관적인 입버릇처럼  뺏아 버린 영혼 없는 아우성의 되새김질을 기억하고 있다, 말의 진정성이 정말 존재했을까,


수명 연장은 이미 백세의 시대를 실현화해가고 있다. 하루에 6시간씩 1년에 3달가량이 수명이 연장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덤으로 하루에 6시간씩 수명을 저축해 가고 있는 셈이다. 수명에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지구 상에 죽음의 고민이 사라지고 영원히 사는 것이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도 살고자 하는 확연한 의지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는가,

이제와 생각을 돌아보니 노인분들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죽어야지"라는 말뜻을 미리 알아내지 못한 오류가 있었다. 이전에는 그 말뜻을 수명을 담보로 하는 조건부 같은 말로만 인식해 왔다.


어릴 때는 꿈은 꾸어도 모방이었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장래의 희망이 담긴 비전의 꿈을 품어 갔다. 장년기에 들어서면서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성 있는 꿈을 꾸어가기 시작하면서 성숙한 삶을 만들어 나갔다. 마지막 노년기에는 소망의 꿈을 꾸어갔다. 꿈이 실상이든 허상이든 우리에게는 마지막 노년기에 꿈꾸어 가는 소망의 꿈을 존경해주어야 한다. 소망은 어쩌면 절실한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꿈일 수도 있다. 노년에 꿈꾸는 소망의 꿈처럼 21세기 인류는 수명 100세 시대를 축복으로 맞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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