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대한민국

또 다른 삶의 시작, 이민자의 생활

by 김종섭

가족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보내고 7년이라는 기간 동안 기러기로 살아왔다. 2013년 한 해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심각하지 않게 이민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몇 달 동안 동분서주하다 보니 어느새 새해가 밝아왔다. 2014년 새해와 더불어 기러기 청산이라는 대 단원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민을 선택한 특별한 동기 부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직장의 입지가 어렵거나 퇴직에 관한 두려움의 고민이 결집되었던 것 또한 결코 아니었다. 동기 부여는 단순했다. 어느 날 작은 아들로 부터 짧은 문자 하나를 받게 되었다.

"아빠!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아 나의 미래 꿈을 같이 나누고 싶어요"

어느 날 작은 아들의 카톡의 내용 하나가 가장의 인생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아내와 함께 유학길에 올라섰다. 한참 응석을 부릴 나이에 아빠의 존재감은 7년이라는 기나긴 부재의 시간을 보냈다. 작은 아들은 절실함을 안고 아빠의 사랑. 애정까지도 부재중인 유년기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낸 것이다.

캐나다로 떠나던 날, 인천 공항은 낯설지 않았다. 기러기 아빠의 애환을 함께 나누었던 그리움과 때론 설렘을 가져다준 공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심적인 변화를 가지고 왔다. 기약 없이 떠나는 몸, 언제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순간 깊은 상념의 파문을 가져왔다.


그해 새해를 맞이하는 1월의 공항은 유난히도 추웠다. 비행기가 활주로 이탈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이륙의 순간 기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진통 끝에 비행기는 이내 이륙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마치 보잘것없는 성냥갑 같은 세상이었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한쪽 눈에 엄지손가락을 가리면 모든 세상이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지구촌의 존재감은 덧없이 작아 보였다.


"잠시 후이면 우리 비행기는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낯설지 않은 기내 방송이 들려왔다. 10시간의 긴 비행이 끝이 났다. 공항 로비에 배웅 나온 가족과 뜨거운 포옹의 만남으로 정겹고 고귀한 가족과의 해후를 했다. 밴쿠버 공항은 늘 숱한 만남과 이별이 공존했던 곳이기에 감회가 새롭다.

"준우 아빠 우리 이제는 공항에서 이별할 일은 없겠네요"

아내가 웃으면서 불쑥 한마디를 꺼낸다.


밴쿠버 공항

공항 입출국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벼 났다 , 나에게 공항은 만남도 있었지만 가슴 시린 이별도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캐나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도심은 또 다른 시작에 용기를 내어 주었다.


밴쿠버 입성은 힘들지 않게 빠르게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새로운 환경에서 수고한 나를 스스로 위로했다. 무작정 1개월만 생각 없이 쉬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의 속도감은 빨랐다. 무엇이 그토록 바빴던 1개월을 보내게 했던 것일까, "백수가 과로사한다 "라는 웃지 못할 말이 문득 생각을 두드리고 지나간다.


그때는 종이 정보지에 의존했던 시대였다. 캐나다 교민사회에서 발행되는 각종 생활 정보지가 넘쳐났다.

정보지

처음부터 직업 선택으로 캐네디언 주류 사회 진입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4년도만 해는 SNS의 영역은 거의 대중화를 실현하지 못하고 전무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교민들은 종이로 발행하는 생활정보지를 활용한 모니터링 구직활동이 유일했다. 한인 업체의 구인 광고는 대부분 식당 아니면 배달 서비스. 노동시장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직업의 선택권은 없었다. 경험을 요구하지 않는 신체 건강한 자의 구직 요강이 최선책이었다.


이민 생활 첫 발을 내딛게 된 직업은 가드닝이었다. 이민 생활은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로 상당 부분 채워져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처음인 것이 많았다. 회사에 출근하기 위한 서류 가방 대신 도시락을 손에 들었고 양복과 구두 대신에 무거운 안전화와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캐나다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말을 한다. 노동은 신성함을 가진다는 자국민의 오랜 직업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사회 한국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직업 성향에 편견은 사실상 남아 있었다. 물론 직업에 귀천 없는 나라에 와서 까지 편견을 가질 이유는 없다. 뭐든 간에 어떤 것을 선택하든 스스로의 마음 가짐이 우선 중요했다.

이민 생활 적응의 시간은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신비의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때론 잡아당기고 때론 밀쳐내었다. 수년 동안 가족을 만나러 밴쿠버에 방문했을 때 느껴왔던 감정 따위와는 전혀 비교가 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민 생활 채 몇 달도 안되어 숱한 유형의 일들을 경험했다. 여유 있는 이민자 생활일 것이라 믿었던 교민사회는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모습에 사실 적잖은 실망감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했던 순간의 시간도 보냈다.


6개월이 지나가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캐네디언 회사의 장벽을 넘어선 것이다. 그 후 평범하지 않은 많은 변화의 삶을 경험해 오고 있다.


무엇이든 자신의 선택한 것은 자신의 몫이다. 자신이 즐겨가야 할 것 또한 자신의 몫이 되어간다. 한국 내 많은 사람들이 영어권 제도하에 있는 국가를 동경하고 적잖은 고민과 함께 이민을 생각해 낸다. 이민은 문화와 언어 그리고 환경이 전혀 다른 곳으로의 터전을 옮겨가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부분이다. 이민 선택의 이유는 모두가 다양했다. 탈 한국이라는 생각으로 충동과 동경만을 가지고 이민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어떤 선택의 삶이든 자신이 만족할만한 삶이라면 후회 없는 보장성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