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던 시간, 그 시절의 기억들
③이 시대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와 성장, 첫 경험 그리고 호기심
청소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이 삶의 중심이었다. 친구 없이는 죽고 못 산다는 말이 낯설지 않을 만큼, 친구들과의 관계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웠다면, 그때는 친구를 만나 함께 노는 것이 유일한 일상이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
학교와 자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검은 교복과 까까머리로 학교라는 엄격한 울타리 안에 갇혔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면 하굣길에서 펼쳐지는 자유가 있었다. 들판을 지나고, 낮은 산을 오르며 친구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았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웃음소리와 친구들의 얼굴은 지금도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소소한 즐거움
학교 근처에는 분식집도, 서점도 없었다. 친구들이 모여 앉아 떡볶이를 나눠 먹거나, 서점에서 만화책을 훔쳐보며 시간 보내는 일은 도시 아이들만의 이야기였다. 학교 앞이라고 해봤자 허름한 구멍가게가 전부였고, 우리는 거기서 10원짜리 군것질거리를 사 먹으며 작은 행복을 찾았다. 자야, 라면땅, 쫀드기 같은 것들이 10원이면 살 수 있었고, 그 몇 가지 선택지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어른이 되어 값비싼 음식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가끔 그 시절 10원의 군것질이 더 그리울 때가 있다.
문화 행사와 첫 경험
도시 아이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지만, 우리 마을에는 대신 야외 이동식 무대에서 열리는 동네 콩쿠르 대회가 1년 중 최고의 문화행사였다. 마치 노래방처럼 참가비를 내고 대기 줄을 서 있다가 순서가 되면 무대에 올라 기타 연주에 맞춰 유행가를 불렀다. 낡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앉아 목을 쭉 빼고 들어주던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호기심과 성장
그 시절 일상은 극히 단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어른들이 하는 일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첫 담배도 그랬다. 호기롭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기침이 터졌다. 친구들과 낄낄대며 다시는 안 피우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건은 이후 호기심에서 멈춘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이성에 눈을 떴다.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가슴 두근거리던 감정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속으로만 끓던 짝사랑. 좋아하는 여자애가 앞을 지나가면 괜히 친구들 앞에서 짓궂게 장난을 치면서도, 정작 속으로는 말 한마디 못 건네던 그 시절이었다. 그때의 설렘과 두려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고등학교와 현실의 벽, 친구들 중에는 사회의 첫걸음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 현실이 조금씩 달라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더 이상 학교에 남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공돌이, 공순이"라 불렀지만, 그 속에 담긴 그들의 아픔과 현실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우리는 사회의 편견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느낀 무력감과 안타까움은 지금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낯선 자유, 설레는 시작
대학에 가서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류탄과 데모, 그리고 자유. 복장과 머리는 더 이상 통제받지 않는 자유를 얻었고, 사회의 성인으로 인정받았다. 밤이 되면 종로의 거리에는 젊음이 출렁였고, 술집과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보는 세상을 경험했다. 그 자유는 마치 새로운 삶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군대와 성장, 혹독한 현실과 변화
그러나 그런 자유도 잠시였다. 대학 재학 당시 군 입영 통지서가 날아오면서, 학업을 도중 중단하고 통지서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에 입대하던 그해 12월 14일 겨울, 날씨만큼이나 혹독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소에서는 매일같이 화생방 훈련, 유격 훈련, 사격, 행군이 반복됐다. 눈만 뜨면 훈련이었고, 구타와 기합도 다반사였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던 시절, 군대 생활은 구한말 시대 같은 억압과 강요의 연속이었다.
전역하는 날,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군대 있는 방향으로는 절대로 오줌도 안 싸겠다고.” 그렇게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군문을 나섰다.
그리고 지금, 지나온 시간들
그리고 지금,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이 성장의 일부였다. 친구들과의 웃음, 첫 경험의 설렘, 군대에서의 고된 훈련.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다. 너무나 빠르게 어른이 되어가던 시간들.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경험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그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