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어름이 되었습니다,등굣길과 친구들, 시골 풍경
② 이 시대의 어름이 되었습니다,
1970년, 나는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 우리 마을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오직 호롱불 하나가 유일하게 어둠을 밝혀주는 수단이었다. 손님이 오거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는 호롱불이 아닌 촛불을 켜는 날도 있었다. 그 외 날에는 늘 호롱불 아래에서 글을 읽고 숙제를 해야 했다. 지금은 전설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마침내 전기가 들어왔다. 그날, 온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신기한 듯 환한 불빛을 바라보았다.그때 장면이 아직도 어제일 처럼 시간을 초월하지 않은 생생함이 남아 있다. 시력을 되 찾은 사람처럼, 신기함에 모두가 놀라고 감탄했다.그후, 밤이 낮처럼 밝아졌고, 어둠 속에만 머물던 세상이 한층 넓어졌다.
그 시절 밤하늘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고 투명했다. 반딧불이 마을 곳곳을 수놓았고, 하늘에는 이름 모를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났다. 요즘처럼 대기오염이나 불빛 공해라는 단어조차 없던 때, 그저 고개만 들어도 우주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광활한 밤하늘 아래에서 자연이 주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 순수한 풍경이, 문득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다.
어릴 적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볼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가득했다. 세상이 궁금했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삶이 기다려졌다.
우리 동네에는 같은 학년의 남자아이들이 12명이나 있었다. 이성보다는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던 시기라 여자 동창들의 숫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 웃고 뛰어놀던 그 시절 친구들은 이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았고, 주름이 깊어졌지만, 마주하면 여전히 십 대 소년의 얼굴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죽마고우"라는 말만으로도 무한의 평화로움과 여유가 생겨난다. 세월이 흘러도 함께한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친구들과 더 깊이 어울렸고, 세상 모든 것이 우리의 놀이가 되었다. 냇가에서 가재를 잡고, 과수원에서 수박과 참외를 몰래 따 먹으며, 마당에 멍석을 깔고 별이 가득한 하늘을 이불 삼아 밤을 지새우던 기억들은 지금 시대에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유년기의 한 페이지다. 문명의 혜택이 부족했던 만큼, 자연이 최고의 놀이터였고, 친구들이 가장 든든한 존재였다.
언제부턴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수록 옛 추억이 더욱 그리워지는 걸 보면,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애틋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과거를 곱씹으며, 나는 앞으로 걸어갈 길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가고 있다.이제 나는 이 시대의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반딧불이 춤추던 밤하늘과 자유를 꿈꾸던 소년이 남아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시절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은 내 삶의 일부로 남아, 앞으로의 길을 비춰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