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어린이 되었습니다, 초등(국민)학교 입학과 유년 시절
① 이 시대의 어름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 나는 일곱 살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내겐 책가방이 없었다.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워 새 책가방을 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던 보자기를 이용해 책과 공책을 간단히 싸서 입학식 전날 나에게 건네주셨다. 그땐 대부분 입학할 때 반 이상은 새 가방 없이 보자기를 어깨에 X자로 메고 등교를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보았던 시절이었다. 가방이 없다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며 학교로 향했다. 작은 보자기에 담긴 책과 공책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의미가 되었는지, 나는 그때 그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당시, 입학하고 한동안 왼쪽 가슴에 무명 손수건을 달고 다녔다. 손수건의 용도는 주로 코를 닦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대체로 코를 자주 흘리곤 했는데, 이는 영양 섭취가 부족했던 탓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이 부족했던 가정에서는 면역력이 약해져 감기에 걸리기 쉽고, 그로 인해 콧물이 자주 흐르곤 했다. 그래서 모든 입학생들은 손수건을 항상 가슴에 달고 다녔다. 무명 손수건 하나로 코를 닦을 때마다, 그것은 내게는 작은 일상이었다.
형의 오래된 옷을 물려받아 입고 학교에 갔다. 그 시절 대부분의 아이들이 형편이 어려워 형제의 옷을 대물림하여 입고 다녔다. 시골 학교였기에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모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대였다. 그 옷 속에서 형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그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나에게 의미를 더해주었고, 그 속에서 나는 진정한 소중함을 깨달아 갔다.
겨울철 교실은 차가운 겨울 공기를 뚫고 난로에서 따뜻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 먹은 도시락, 어두운 창문 너머로 보였던 겨울 하늘이 생각난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차가워진 도시락을 난로 위에 층층이 쌓아 올려놓았다. 차가운 도시락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난로 위에 올려놓을 때, 그 온기를 기다리며 서로 나누던 작은 이야기가 지금도 마음속에서 따뜻하게 기억된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내가 사랑을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가끔 미군 트럭이 지나갈 때면 우리는 모두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달려갔다. 그때 받았던 작은 초콜릿 한 조각이 얼마나 값지게 느껴졌는지, 지금도 그때의 기쁨이 잊히지 않는다. 그 초콜릿 한 조각은 그 당시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 작은 행복을 나누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달렸고, 그때의 감정이 지금도 내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 시절, 보자기 가방과 형의 옷이 나를 대신해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담아주었고, 나는 그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형의 흔적을 느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어른으로 자라게 만들었다. 소박한 가방과 물려받은 옷 속에서 나는 세상에 대한 첫 번째 배움을 얻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때로는 잃어버린 것 같았던 것들이, 그때 그 시절에 담겨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의 소박한 행복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그 모든 일상 속에서 나는 진정한 가치를 배웠다.
이제, 어른은 중년을 지나 이 시대의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알 것 같다. 무엇이 부족하고 그 무엇이 풍족한 삶이었고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었던 그 모든 순간들인지를,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소박하고 간절했던 그 시절이 결국 나를 어른으로 자라게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의 모든 추억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그 시절의 작은 것들이 내 안에 깊은 울림을 주었고, 그 울림은 오늘도 나를 이끌어간다. 세상에 나를 키운 것은 가방도 옷도 아니었고, 사랑과 기억의 힘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시절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