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에 <재벌집 막내아들>이? 대한민국 국격의 위상을 느끼다.
지금 시간은 미국 현지 일요일 오전 11시6분입니다.
앗차.. 브런치 발행 시간이 한국 시간으로 일요일인데, 한국은 벌써 월요일 새벽이겠네요. 또 지각해버렸습니다. 미국에 온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훌쩍 따라온 미국, 영어공부에 대한 두려움이나 남편이 학위를 따는 동안 제가 맞서게 될 2년간의 공백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이 모든게 제가 선택한 길이니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과제일 겁니다. 이제 겨우 시차적응이 될랑말랑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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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 지 일주일 간, 제일 난감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는 다름 아니라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브런치는 실질적으로 미국에 오자마자 부딪혔던 영어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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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 중, 청담동 살아요 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김혜자 님이 주인공인 드라마로, 가난한 동네에 살던 가족이 우연한 기회로 청담동 만화방에 입성하면서 벌어지는 일들- 부유층과 서민층의 갈등이라던가 하는 사회적 문제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정서적인 일들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드라마지요 거기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청담동 허름한 건물에서 만화방을 운영하지만 부자인 척 백화점 vip 문인회에 참석하던 혜자는 우연한 기회에 고급 만년필을 얻게 됩니다. 그 길로 기쁜 마음으로 만년필에 영문으로 이름을 새기고 문인회에 가는데요,
문인회 사모님들은 혜자를 비웃습니다.(!)
"여사님, 만년필에 gim이라고 새기셨네요? 김은 영어로 kim 이에요 ^^"
망신을 당한 혜자는 곧 바로 이렇게 둘러댑니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 아닌가요? 제가 김씨인데 왜 킴씨라고 하나요 킴씨하고 싶은 사람은 킴씨하세요, 저는 김씨할래요. 김.혜.자!"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문인회의 대장격인 박순애 여사는 자기 만년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실은 김혜자가 아주 명망높고 높은 사람인 것으로 지위를 착각한 탓이지만) 당장 자신의 만년필의 이름을 바꿉니다. park이 아니라 bak 으로 말이죠.
미국에 와보니 하다못해 스벅을 가도 참 난감한 것이 영어이름입니다.
사실 저는 영어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이 유명한 인물로부터 따온 것이라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벌써 10년전일까요,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 제 이름을 소개했더니 몇몇 애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의아해하며 이러더라고요.
" 너 그 이름 부모님이 지어주신거니?"
이게 은근한 비웃음 또는 인종차별의 일종임을 알게 된 것은 아주 후의 일이였습니다.
ㅘ,ㅕ,ㅓ,ㅐ,ㅖ,,
외국인들이 참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발음입니다. 그런데 은근한 오기였을까요, 다른 영어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현타가 오더라고요. 요즘은 영어유치원에서 애기때부터 영어 이름을 짓는다고도 하고,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본인에게 걸맞는 영어이름짓기 콘텐츠가 참 많습니다만...
그런데 놀라운 일입니다. 미국에 들어온 일주일 동안 특히 어제, 차를 사러 딜러샵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딜러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저는 또 당황했지만, 제 이름을 불러주니까 천천히 또박또박 제 이름을 애써 발음하면서 그러더라고요.
" 네 이름 이게 맞아? 이름이 참 예쁘다!" 라고요.
남편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도 제 이름을 풀 네임으로 부르려고 노력하는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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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10년, 20년 전의 해외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어디를 가든 한류가 있고, 정말로 작은 마트에도 k pop이 흘러나온다거나 한식당이 참 많으니까요.
특히 mba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콘텐츠가 떠오르고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을 아시아 쪽에서는 제일 선호하기도 하고, 한국 쪽으로 잡 오퍼를 받아 오는 게 꽤나 성적이 높아야 가능한 경우도 많다고 하니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음을 느낍니다. (객관적으로요) 이건 오히려 해외에 오래 체류해보신 교민 분들이라면 더욱더 체감할 것 같습니다.
국내에만 있을때는 실은 소위 국뽕 콘텐츠라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애국심이랄까 그런 건 별 생각 없이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 나와보니 성장한 대한민국이 얼마나 감사한지 절절히 깨닫게 되네요.
앞으로도 저의 미국생활 적응기는 쭉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