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엠디 Dec 29. 2024

 미국 한인 독서모임에서 건네받은 봉투 하나

Day7. I've pulled through it.

안녕하세요. 장엠디입니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고 계신가요? 이곳 미국은 화창한 토요일 오후 4시입니다.

오늘은 조금 진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하루 한 문장 생존영어 시작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문장]

pull through (힘든 시기, 질병, 상황 등을 이겨내다, 극복하다)

It was a tough year, but I've pulled through it. (힘든 한 해였지만, 잘 극복했어.)


pull through는 대화에도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through(~을 통해), pull(끌다). pull through라는 동사는 저에겐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꽁꽁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람이 안간힘을 다해 몸을 끌어내어 시련을 이겨내고 태양을 마주하는 이미지를 연상케 합니다.


오늘 이 에피소드를 쓰기까지 몇 번이나 브런치를 쓰다 지우며 망설였는지 모릅니다.

오랜 독자님들은 아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겨우 결혼 1년 남짓된 신혼이었던 올해 초 심지어 9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던 직후, 정말 큰 일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기억이 저에게는 너무 끔찍해서 최대한 입 밖에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양가 부모님들께도 더 이상의 걱정은 끼쳐드리기 싫어 이후에는 일절 입 밖에 내지 않으려 더 노력한 것도 있었고요.


https://brunch.co.kr/@jangmd/55

 남편이 출장지에서 두개골 골절, 6군데 뇌출혈로 쓰러지고 중환자실에서 3일 이상 의식을 잃었을 때 저는 빌 수 있는 모든 곳에 빌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그동안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고 욕심을 부리며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닐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해탈하기까지 했습니다. 기적처럼 남편이 완쾌하여 이곳 미국에 올 수 있었고, 그 이후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작은 일에도 크게 마음을 쓰고 꽤나 예민하게 모든 것에 신경 쓰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 일을 겪은 뒤 저를 알게 된 사람들은 저를 보고 담담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나 생각도 참 많이 바뀌었고, 한편으론 가족의 건강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미국 입국 초반 한 달은 남편이 건강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벽에 깨서 남편이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본다던지, 혹시 후유증으로 경련 등은 없는지 찾아본다던지, 만약의 일을 대비해 남편 동료들의 비상 연락처를 모두 받아두고 병원 위치를 확인한다던지.. 저 스스로 생각해도 거의 신경증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휴스턴 가던 날 차 안에서. 흐린 날 구름 사이에서 나오던 태양을 보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pull through" 잘 이겨내길..

 오늘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어제 독서모임에서 겪었던 일 때문입니다. 이곳 미국에 동반 비자로 입국한 뒤, 유일한 남편모임이 아닌 '저의 모임'이자 제가 일주일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한인 독서모임이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요, 독서토론을 하면서 힘들게 올해 제가 겪었던 큰 일과 트라우마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모두 큰 일 겪었다고 그 만하면 다행이라고 저를 도닥여주셨지요. 어제도 정말 즐겁게 독서모임을 마치고, 다음 주부터 남편과 한국에 일주일 정도 다녀올 예정이라, 2주 정도 불참한다고 말씀을 드린 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예후 관찰을 위해 뇌 mri&mra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는 일정이었거든요. 이제는 남편이 완전히 괜찮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원 갈 날짜가 다가오니 싱숭생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독서모임이 끝날 때 즈음, (알고 보니 저보다 15년은 먼저 학교를 다니셨을 까마득한 96학번 선배님이셨던) 독서모임 조원 한 분께서 저에게 봉투를 건네주셨습니다.

진짜 별 건 아니고.. 봉투가 이래서.. 처음 한국 다녀오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요,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둘이 재밌게 다녀와요.
너무 놀라고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차에 올라탄 뒤, 이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부터 찍었다. 부득이하게 이름은 가리고 브런치에 올려본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얼떨떨한 채로 연신 인사를 드렸습니다. 실은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소중히 봉투를 챙겨서 집에 왔습니다. 제가 k장녀 느낌이다 보니 한국 들어가서도 주위 사람들만 챙길까 봐,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덕담까지 건네주셨습니다. 이 먼 미국에서 이렇게 사람으로 위로받고, 감동받아도 되는 걸까? 맘 졸이고 힘들었던 시간이 떠올라 눈물까지 찔끔 나더라고요. 저희 독서모임은 제가 막내로, 저보다 10-20살 이상 많으신 분들이지만 우리 모두 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모였습니다. 언제나 존중해 주시고 이제 갓 미국에 온 새댁을 이유 없이 무한 응원해 주시는 독서모임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를 브런치 공간에 쓸까 말까 많이 고민도 되었지만, 독자님들께도 제가 느꼈던 따뜻한 온기가 조금이나마 글로서 전달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If we have good people around us, we can always pull through.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언제나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 혹시 힘든 일이 있으신가요? 이번에는 제가 기운을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을 이윽고 통과해 내고, 밖으로 몸을 끌어내어 완전히 새로운 또 다른 태양을 마주하실 수 있는 하루 되시기를, 새해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