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이 곧 이야기이자, 그것을 적으면 글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선생님이 늘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답니다!”라고 말했지만, 랄프는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한다. 심지어 반 친구들이 온갖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도, 자기도 그런 걸 쓰면 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랄프의 탄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아아아아! 난 쓸 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쓸 만한’이다. 랄프는 무의식적으로 쓸 만한 이야기와 쓸 만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눠서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것은 랄프 자기만의 기준이기 때문에 남들은 정확히 어떤 기준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랄프는 분명히 자기도 잘 모르는 그 막연한 기준에 의거해서 글감을 찾는데, 생각보다 그 기준이 높은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경험이나 이야깃거리도 랄프의 그 기준을 넘어서 종이로 튀어나오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랄프는 그 이야깃거리라는 것이 밖에서,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 혹은 어떤 사건이 벌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한다. 랄프는 이야깃거리가 생기기를, 이야깃거리가 나타나기를, 이야깃거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자기 자신이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있는 이야기 창고라는 사실을 모른다. 평생을 다 써도 못 쓸 만큼 너무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가 숨만 쉬어도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계속 창출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아무리 고민해도 글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별 짓을 다 하고 있는 그 행위 자체가 아주 재밌는 이야깃거리라는 것조차 모른다.
랄프는 ‘이야기’라는 것, 혹은 ‘쓸 만한 것’에 대해 잘못된, 혹은 고정된 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뭔가 대단한 것, 그래서 종이에 옮겨 적고 발표할 만한 것, 특별한 것, 어마어마하게 재밌는 것, 색다른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야깃거리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랄프는 데이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데이지, 난 이야기를 못 쓰겠어. 나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든.” 여기서 랄프가 말하는 ‘아무 일’이란 방금 말한 대단하고 특별하고 어마어마한 일을 말한다. 그러자 데이지의 반응이 가관이다. “랄프, 지금 나 놀리니? 내가 쓴 네 이야기만 해도 한 트럭은 되겠다!” 그렇다. 랄프는 이야깃거리가 주렁주렁 달린 아이고, 데이지는 옆에서 그걸 본 이야기만 써도 이야기 책이 몇 권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랄프는 자기가 그렇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랄프가 자기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자존감이 얼마나 낮은지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랄프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랄프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흥미롭고 대단한 이야깃거리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랄프는 자기보다 글을 잘 쓰는, 멋진 이야깃거리들이 가득한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심지어 짝궁이 랄프에게 넌 이야깃거리를 정말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해줘도 믿지 못한다. 그러면서 랄프는 이렇게 탄식한다. “난 데이지처럼 훌륭한 작가는 못 되겠구나.” 우리는 안다. 데이지나 다른 학급 친구들이 랄프보다 재능이 많고, 글도 잘 쓰고,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꼬마들일 뿐이다. 다만 그들과 랄프의 차이점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소중하게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자신에게 있는 것의 귀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헛되이 노력하고, 자신에게만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며 좌절하는 것이다. 그런 랄프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다. 모두가 알고 모두에게 보이는 것이 오직 랄프에게만 보이지 않는다.
랄프가 ‘쓸 만한 이야기’에 대한 개념과 인식, 시선을 바꾸지 않는 한, 그는 헤맬 이유가 전혀 없으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헤매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도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고, 잘 쓸 수 있는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을 한심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 아무리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말해주어도, 본인이 믿으려 하지 않으면, 깨닫지 않으면 절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랄프가 ‘쓸 만한 이야기’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애벌레’와 관련된 것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랄프의 ‘쓸 만한 이야기’ 기준에는 애벌레가 없었던 게 틀림없다. 애벌레 이야기 같은 건 랄프에게 너무도 하찮고, 작고, 별 볼 일 없는 것이어서, 감히 그것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온갖 소소하고 잡다한 이야기들을 글로 쓰는 걸 보면서도, 그 애들이 쓰는 건 다 대단해 보이고,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You’re OK, I’m not OK.
하지만 억지로 앞으로 끌려나가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애벌레 이야기를 꺼낸 랄프는 아이들의 반응과 질문들을 통해, 애벌레가 엄청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겪은 애벌레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궁금해 하면서 물어보는 수많은 질문들, 애벌레의 크기, 애벌레를 만져본 느낌, 애벌레의 이름, 애벌레에 대한 엄마의 반응 등등, 그 모든 것들이 흥미롭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걸 랄프가 알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내가 글쓰기 수업에서 해야 되는 일도 바로 이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렇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 사람만이 가진 경험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 말이다.
랄프는 그 날 이후로 ‘글쓰기 왕’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경험한 모든 사건들이 다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만큼 놀라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내가 이미 그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다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만큼 가슴 벅찬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글쓰기 왕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될 수 있다. 나는 이미 글쓰기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