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 그림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의 대상은 주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내가 원하는 것이 생기기를,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를,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키가 작아서 속상한 꼬마는 키가 크기를 바라고, 혼자라서 외로운 남자는 사랑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부모는 자식의 전화를 기다리고,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린다. 덕분에 지금의 삶은 항상 다음 단계의 새로운 무언가, 지금은 내게 없는 것에 대한 기다림이 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기다리다가 삶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게 인생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길,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 되길, 지금 없는 것을 갖게 되길 바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기다리는 상태에 있는 이 인물들이 나는 답답해 보인다. 어째서 그들은 현재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누리기보다는, 없는 것들을 바라면서, 기다리길 선택할까? 어째서 현재의 자신의 삶엔 만족하지 못하고, 늘 그 다음 단계를 꿈꾸고 기다리면서 지내는 걸까? 뭐가 올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면서 사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 그림책을 첫 페이지부터 다른 시각에서 봐보고 싶어졌다.
아이는 어서 키가 크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자그마한 아이였을 때만 할 수 있는 놀이들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도 있다. 개구멍을 통과한다든지, 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서 논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창밖을 보면서 비가 그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에, 집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안락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솔로일 때에만 누릴 수 있는 복잡하지 않고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사람과 다시 만나길 막연히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거나 찾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시간이 지나야만 오는 것이고, 전쟁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많은 나라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서 모든 것이 정리되야 끝나는 것이다. 또 프로포즈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승낙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아질 때까지. 아기가 태어나는 것도, 케이크가 구워지는 것도, 휴가 때가 오는 것도, 정해진 시간과 기간이 있는 것, 혹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은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부 싸움을 한 후에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기다리는 것 같은 일들이다. 이건 기다릴 일이 아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잠들기 전 부모가 와서 뽀뽀해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도, 마냥 기다리다가 행여 오지 않기라도 하면 실망해서 울지 말고, 잠들기 전에 와서 뽀뽀해달라고 부모에게 먼저 요청해야 한다. 자식들의 안부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연락하면 되고, 궁금하거나 보고 싶으면 집에 한 번 들르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인생이란 것이 언제나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되진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이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수동적인 것만도 아니다. 나에겐 언제나 지금 가진 것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있고, 내가 원하는 쪽으로 상황을 바꾸어나갈 힘도 있다. 마치 ‘운명’이라는 글자에서 ‘운’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을 뜻하고, ‘명’이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정해진 것을 의미하듯이, 인생도 그러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삶을 대할 때,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태도이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행동하고 기다렸으면 좋겠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도 있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기다리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