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유적, 왕코르와트, 크메르제국
2024.02.21. 정글 속 돌의 도시 앙코르와트에 오다
난 언젠가부터 앙코르 와트를 와 보고 싶었다. 얼마나 대단할까? 빨갛게 일렁이는 석양을 배경으로 앙코르와트가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어서 가 보고 싶었다.
어쩌다 해외여행에 대한 말이 나오면 ”캄보디아로 가자 “고 말해 보았지만 시큰둥한다.
그래서 이번 태국 여행 중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온 것이다.
전날 저녁에 빌려 놓은 스쿠터(2일 사용 18달러)를 타고 일찍 길을 나섰다. 너무 덥기에 오전에 보고 집에서 쉬었다가 더위가 한풀 꺾일 때 다시 석양을 보러 갈 것이다.
아침 일찍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정글 사잇길을 스쿠터로 달리는 맛은 타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영화에서나 봤던 짙은 밀림의 이국적 정취를 느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앙코르 와트 입구에 왔나 보다. 군인 같기도 하고 경찰 같기도 한 복장을 한 몇몇의 남녀가 우리를 세운다. 입장표를 보여 달라한다. 없다고 하니, 이곳에서는 살 수가 없으니 저 어딘가에 가서 사던지 온라인 구매를 하라고 한다. 덩치 큰 검표원이 인터넷 문맹인 우리 부부가 할 줄 몰라 쩔쩔대는 모습을 보더니 남편의 핸드폰을 받아 대신 입장권을 구매해 주었다. 우린 7일권을 샀다. (1인당 72달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앙코르 유적군에는 앙코르와트, 앙코르 툼, 바이욘, 타프톰이 유명하고 그 외에도 여러 군데에 유적들이 흩어져 있었다.
앙코르 와트를 향해 걷는다. 이른 시간인데도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이 많이도 들어온다. 눈을 찌르는 듯 쨍한 해가 올라온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여기저기서 터져 오른다. 돌판으로 만들어진 진입로를 걷는다. 진입로 옆으로 이국적인 나무들이 우뚝하게 서 있다. 거무스름하고 요염하기도 하고, 불에 탄 듯한 색을 내고 있는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사원 안에는 긴 회랑이 있고 칸칸이 이어진 방을 들어갈 때마다 입구가 작아져서 멀리서 보면 문안에 문이 있고 또 그 안에 또 그 너머의 문이 보이면서 미니멀하면서도 절제되고 미적으로 아름답게 계산된 그 시대의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이 궁금해진다. 밖은 아주 덮지만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은 회랑, 반대쪽은 시원스럽게 크게 창이 뚫려있어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오니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이렇게 바람길까지 생각한 것인가?
앙코르 유적은 산림 지역을 포함해 400 제곱 km 이상으로 퍼져 있고 이곳은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수리야바르만 2세가 비슈뉴 에게 바치는 힌두교 사원이다.
너무나도 대단한 건축물이고 감동스러운데 역사적 배경이니 지식이 없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잘 정리된 유튜브가 있어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다음은 <인디아나 준스, 김준상, 유튜브 14F일사에프>에서 적은 내용이다. <인디아나 준스 김준상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한 크메르 제국이 건설한 사원으로 천상세계를 지상에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 거대한 규모와 섬세한 부조는 돌의 예술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워 현대 건축가조차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게다가 앙코르와트는 7톤짜리 기둥 1800개와 돌로 만든 방이 260여 개에 달하며 거대한 인공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이 사원이 500년이 넘도록 세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그저 전설의 도시로만 여겨졌던 때가 있다. 당시에는 앙코르와트가 저주받은 도시라고 불리며 이곳을 발견하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도시 괴담도 있었다.
12세기 동남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했던 크메르 왕국의 도읍지이자 왕궁이었던 앙코르와트, 인구가 100만 명에 달했던 대도시는 왜 밀림 속에 파묻혀 있었고 이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
12세기에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앙코르와트가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프랑스의 생물학자 앙리무오를 통해서였다. <앙리무오>는 탐구를 위해 1860년 캄보디아를 찾았다. 그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숲을 탐사했는데 일부 구간에 다다르자 현지 가이드가 절대 들어갈 수 없다며 동행을 거부했다. 도시를 발견한 자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앙리무어는 그저 흔한 괴담으로 여기고 가이드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서 탐사를 이어갔다. 그때 그는 놀라운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그 전설 속 유령도시를 발견한 것이다.
앙리무어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이곳은 도시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이 과거 기록에 남아있던 앙코르 와트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실제 앙코르와트에 대한 기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1280년대 원나라는 캄보디아에 있던 크메르제국을 침략한다. 그 후 캄보디아를 자세히 기록하기 위해 원나라 무역 상인이었던 주달관을 사신으로 파견한다. 그때 주달관은 앙코르 와트를 보게 되었고 자신이 본모습을 토대로 진랍풍토기를 저술하게 된다. 이 책이 바로 앙코르와트의 첫 기록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서구 세계에도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때문에 앙리무어도 앙코르와트에 대해 알고 있었고 정글에서 발견한 유령도시가 바로 그곳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 뒤 프랑스로 돌아간 앙리 무어는 자신이 본 거대도시를 상세한 내용과 스케치로 기록해 책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는 앙코르와트를 이렇게 기록했다. “솔로몬 왕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 같은 뛰어난 조각가가 새긴 것과 같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이 세운 것보다도 더 장엄하다.” 하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캄보디아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아 앙리무어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앙리무어>는 프랑스로 돌아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말라리아로 사망해 이것에 대해 해명할 사람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몇 년 뒤 <앙리무어>의 책을 접한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예술가인 <루이 둘라포트테>는 앙리무어의 말이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에 캄보디아 탐사를 시작했고 마침내 유령도시였던 앙코르와트가 500여 년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앙코르와트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자 그에 따른 궁금증도 커지게 된다. 그중 가장 의문인 것은 대체 어떻게 이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는가 이다. 앙코르와트는 동서 1.5km, 남북 1.3km의 거대한 규모이다. 어떠한 접착제나 보조 재료 없이 오로지 결합만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약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재할 정도로 견고하게 지어졌는가이다. 앙코르와트는 약 천만 개의 돌을 사용해 건설되었다는데, 그 개수도 놀랍지만 벽돌 1개가 약 1,5톤에 달하는 것도 있어 당시 기술로 어떻게 옮겼는가에 대한 의문이 쌓여 갔다. 앙코르와트는 정글에 둘러 쌓여 있고 즉, 주변에 돌을 가저 올 곳도 없었는데 말이다.
2012년 연구에는 앙코르와트가 거대한 운하를 조성한 도시였다는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앙코르와트 주변 지역에 약 50개의 채석장이 발견되었고 위성사진을 분석해 채석장과 사원을 연결하는 수백 개의 운하와 도로망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해 돌을 옮겼다는 것이다. 이에 연구팀은 고대 건축가들이 앙코르와트를 빠르게 건축할 수 있었던 비밀은 운하에 있었다며 앙코르와트와 관련된 오랜 미스터리가 풀렸다고 덧붙였다.
사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기록에 따르면 앙코르와트의 인구는 약 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가 거대하긴 해도 100만 명을 수용하기엔 공간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2016년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앙코르와트 인근 산림 지하에 거대한 중세 도시가 있다는 내용이다. 해당 연구팀은 공중 레이저 스캐닝 기술로 이 도시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곳은 왕국을 창건한 자야바르만 2세가 지은 <마헨드라 파르바타>라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 도시의 수로와 도로는 앙코르와트와 연결되어 있어 앙코르와트에 대규모 인구집단이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음에도 어떻게 그들은 500년 동안 앙코르와트의 존재를 몰랐으며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크메르왕국과 국경을 접하는 타이 샴족에 의해 멸망했다.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내전이 발생해 무너졌다와 같은 가설인데, 아직 이에 대한 뚜렷한 문헌이 없어 아직도 멸망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2018년의 새로운 가설은, 바로 앙코르와트의 멸망이 ‘기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해당 지역의 고고학적 지도 자료를 모두 동원해 당시 존재했을 수로, 해자, 저수지 등의 관개 시스템을 모델화 했다. 강우 자료를 분석해 14세기말쯤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홍수를 도시 모델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실험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관계 시스템이 급격히 붕괴된다는 분석을 내린다. 쉽게 말해 연달아 발생한 홍수로 인해 도시가 농작물을 키울 수 없는 환경이 되어 앙코르와트 주민들이 모두 도시를 떠나 버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앙코르와트는 물 위에 지어져 홍수에 취약했을 테니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가설일 뿐, 앙코르와트 주변의 수많은 인구가 왜 사라졌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는 현재 열대우림가 뒤엉킨 이국적 풍경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관광지이자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로 여겨진다. 그럼 그 앙코르와트 건축기술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오래전 수십만 톤의 돌을 옮길 수 있는 기술과 대운하 시스템 그리고 현대 건축전문가들도 놀랄 만큼의 정교한 조각 양식은 어디에서 흘러 들어와 앙코르와트를 만들 수 있었는지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는 착공 후 약 37년 만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현대 기술로도 이 정도의 규모와 정교함을 37년 안에 완성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니 그 당시에는 어떤 기술로 이것이 가능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지상의 천상세계 그리고 무려 500년간의 정글 속에 감춰져 도시 괴담으로 여겨졌던 앙코르와트, 이곳은 현재 캄보디아 국기에도 그려져 캄보디아이 상징이자 자랑으로 여겨진다. 국가 차원의 복원 정비 사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그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참고:
<인디아나 준스, 김준상, 유튜브 14F일사에프>에서 많은 부분 받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