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살며

써 내려가는 우리 이야기 | 마리아는 승천, 붓다는 열반.

by 하이디김

붓다는 열반에 들어 중생을 구하고

도반에게 가르침을 나누어

모든 이를 깨치게 하고자 했다.


청년 붓다(고미숙, 북드라망)를 읽고 찾은 한 줄 요약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모든 걸 다 가지고 태어난 붓다는 왕국의 잔치 속에서마저 배곯는 서민이 먼저 보였고

결국 출가를 했다.


아버지는 그가 왕국을 잇기를 바랬고

스승은 그가 계보를 잇기 바랬지만

종국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열반에 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함께 길 가다 흩어진 도반을 찾아내어

자신이 터득한 길을 나누어 그들도 열반에 들게 했다.


힘겹게 한 권을 마무리했고, 이 글을 쓰려다가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성모마리아의 승천이 떠올랐다.

승천과 열반을 같은 것으로 보기에 무리는 있지만.

승천한 성모마리아가 부러웠다.

붓다에 비하면 더 쉬워 보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몇날 며칠 굶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붓다와 비교했을 뿐)

두 아이의 엄마인 나도 붓다보다는 마리아의 생애를 좇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고.


어디, 성인에게 비견하랴 싶지만.

누구나 롤모델 하나쯤 마음에 품을 수 있지 않나.

영원히 닿지는 않더라도 마음의 지향점.


승천이 가능하도록

깃털처럼 가볍게 생을

살려면 어떻게 할까?


무한한 사랑으로 누군가를 위한 기도로 가득찬 하루를 사는 것?




내 안위, 몸과 마음 건강에 집착하며 살았다.

신이 모두에게 오지 못해 어머니를 두셨다는데

뒤늦게 책임감과 압박감을 느낄 때가 있다.

책임은 당연하지만 압박감은 떨쳐야지.


열반, 일체의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은 경지.

붓다에 관한 책을 읽을 때에는 무언가를 깨칠 듯도 하였는데.

표지를 닫으면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무아의 경지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 세상을 사는 이 중에 있을까?


내가 실천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은,

무거운 하루살이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워질 것.


자유롭게 제대로 살기.


부모 됨이 무겁다면 내 마음이 어딘가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으로 키우고 싶고.....


마냥 하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마무리하지 못함마저도

혹여나 다가올 아이들의 미래가 어두울까 하는 걱정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은 걸작이 될 테니까, '


평생 습작에만 몰두했던 한 노인은 홀로 살며 로봇을 수리한다.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소설집에서 작가 조서월의 「I’m Not a Robot」에 등장한 노인은

고립된 사막에 살며 고장 난 로봇을 수리한다.


노인의 죽음 후에 아이러니하게도 로봇만이

노인 삶의 이유를 온전히 이해했다.


노인은 죽었지만, 말속에서 나는 위안을 얻었다.


꿈과 소설, 그 기록에 희망이 있다.

기록 속에 의미가 있기 때문일까?


기록을 남기고 의미를 되새기고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


내가 어떻게든 해 보고자 하는 미션.

여러 방해물을 이겨내고 희망을 남길 단 하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

그 속에 자유로움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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