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픔은 어디에나 있어 1)나 많이 아파

신체화, 모두가 겪는 고통에 붙인 이름

by 하이디김

이 글은 2023년 처음 썼던 글 「나를 구하려 쓰기 시작한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씁니다. 그때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말들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들어가는 글


딸이 집을 나갔다. 마음이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든 날이었다. 두 번째 입원이다. 보호 병동에서 한 달을 더 살아야 한다. 며칠 전만 해도 다시 웃으며 학교로 가겠다 다짐했다. 교실에서 채 막지 못한 이차 피해가 우리를 끌고 굴 속으로 다시 들어 간다. 이젠 익숙해져버린 보호 병동에서도 내딸은 퇴원을 외친다. 아직 몇 주는 더 지내야 한다. 얼마나 갑갑할까. 네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나는 무엇을 읽고 들었던가, 무엇을 들어주었냐던 남편의 말이 가시가 된다. 네게 쏟았던 시간과 관심은 어디를 향했던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네가 다시 환한 웃음 짓던 상처 받은 적 없는 너로 돌아와 준다면 난 뭐든 할 것 같다. .....



나 역시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면접 앞두고 들락거리는 화장실이 바로 가벼운 신체화 증상이다. 한 후임은 상세불명의 염증을 달고 살더라. 각진 자세로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곤 하였지만 실상 그 몸은 싫었나 보다. 인수인계를 위해 가르치기는 했지만 갓 입사했을 때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여느 회사와 다름없이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꼰대 상사가 있었다. 나를 내치고 내 자리를 메우기 위해 뽑힌 후임이었다. 보직이 강제로 바뀌고도 약 이 년을 열심히 일했다. 바뀐 부서에서도 묵묵히 살 길을 모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메이커인 꼰대 상사이자 적과 동침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 분위기 메이커는 늘 부정적인 분위기를 메이킹했다. 늦은 저녁 혹은 퇴근 시간을 몇 분 남기지 않고 회의를 호출하기는 물론이고 결론도 없고 질서도 없지만 '답정너'식이므로 괜히 입을 떼고 자신 있게 주관을 밝히는 이는 거의 없다.


늘 주최하는 비생산적인 회의에서 안 그래도 긴 설교가 더 길어지거나 그날의 욕받이가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까운데 어린 네가 독감에 걸렸을 때 재택근무를 허했다는 장점(손가락에 꼽을 만큼 몇 안되는 그 장점들)도 있었다. 떠나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슨 공문, 고객 실사 보고서, 마케팅 뉴스레터에 이르기까지 몇 줄이든 간에 글쓰기 교정에 진심이었던 그 꼰대때문이었다.


6개월 남짓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오신 상사는 접속사 뒤에 생략한 주어를 못마땅해했다. 영어 전공인 내가 그마저도 수용했어야 한다? 글쎄, 영어를 배웠다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지적이 넘쳐나는 미팅이 길어졌다.


못난 직장 상사의 무지함과 아집은 한계가 없었다. 한직이랍시고 강제로 옮겨진 부서에서 괜찮 실적을 내고 대표이사와 회의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면목상의 상사라 해도, '좋다, 예산이 얼마 더 필요하냐, 얼마 더 할 수 있냐?' 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기사 한 줄, 한 단어를 같이 교정하려는 상사랑 더 하는 것은 시간낭비였다.


신묘하게도 그곳을 탈출할 결심과 동시에 네 동생, 둘째가 찾아왔다. 열 살 터울은 계획임신은 아니다. 여기가 아닌가벼, 열심히 운동했고 나를 돌보기 시작했을 뿐.


너만 신체화에 고통받는 건 아니야. 내 딸아, 세상 모든 이들이 크든 작든 떠안고 살아간다. 홧병이라고도 하지. 울화.


내가 나를 구하려고 쓰기 시작한 글이다만 쓰다 보니 네 지분이 제일 크다. 같이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네가 퇴원을 하면 그날이 곧 오리라. 아니 어떠한 식으로든 네가 네 상처를 객관적으로 보기를 바란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너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네 아빠는 말했다.


너를 벌주는 너 자신을 용서하고

너 자신과 화해하고

또 그애를 용서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본다.

Sora로 만듬

아무튼, 엄마는 말이다. 그렇게 난생처음 만난 꼰대와 이별했다. 그리고 새롭게 회사를 구했다.


우습지만, 꼰대가 나를 마케팅 팀으로 옮긴 덕에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그러니까 지금 마음이 괴로운 일이 생겨도 시간이 재해석을 해주더라. 어디서든 우린 열심히 살아내니까.

우리가 우리를 구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새로 시작한 또다른 회사에서도 40개월을 근무했다. 예기치 못하게 사건이 생겼다. 이생에서 만난 두 번째 꼰대로부터 내가 나를 구하려고 한 모든 행동이 이를 자초했다고 본다. 나는 이 두 번째(혹은 마지막) 꼰대를 잘 다루었다고 착각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고 매 순간 내 선택은 무엇보다 내 정신적 건강을 우선으로 했다. 두 번째 꼰대는 새 모기업 국내 지사장이었다. 직속 상사와 직속 팀은 모두 미국에 있었고 내 업무 실적을 관리했지만 사측 구조조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그 꼰대는 사측의 경영악화를 등에 업고 조직에서 나를 제거했다. 그 역시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라 악감정은 없다. 온통 경영악화로 사람을 자르는게 다반사인걸 인사권 행사도 결국 일의 연장선이다. 연봉 순서와 글로벌 직무 등등의 이유로 내 이름이 지사 소속 정리 명단에서 반짝였다면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난 꼰대들에 대한 썰은 엄창 길어 질 수 있지만 너와 나눈 적은 많지 않았다.

왕도도 아니고 법도도 아닐지라도 너와 같은 피를 나눈 내가 나름 깨달은 교훈과 대처법을 종종 나누었더라면 어땠을까.

네 마음의 상처가 이렇게까지 깊어지지 않지 않았을까? 곱씹음과 후회는 늘 나를 따라다닌다.


지난 7년 동안 일어났기에 하나하나 풀어서 짧은 문장으로 쓰자하니 스텝이 꼬인다......


어제는 병동에서 주치의가 반가운 전화를 걸어왔다.

네 증세가 호전되어 이제 간병사는 곧 그만 와도 될 것이라고.

낯 모르는 분이지만 바로 달려온 친할머니처럼 세심히 챙겨주신 분께 고맙다. 네가 하루하루 웃으며 지냈다고. 쾌차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어린 딸과 낯선 이의 동행에 걱정이 되고 밤낮으로 동동거렸던 날들이 길다.

여의치 않으면 내가 병동에 들어가야 했을 터이고 네 어린 동생은 밤마다 울어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또한 네게 찾아와 준 복이다. 다시 한 번 고맙다.





이 글을 다시 제 손으로 썼습니다. 되돌아보니 진정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시간을 살아내었습니다.

흥분해서 쏟아낸 말들이 대부분이라 주어와 동사가 서로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 저미는 시간으로 가득 찬 그 때를 지금이라도 다시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쓰는 과정에서 ChatGPT가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프롬프트를 써 주었고

Sora에서 만든 이미지를 보며 제가 그 프롬프트를 몇 번 씩 수정해서 만든 이미지를 삽입했습니다. 단풍잎이 너무 크게 그려져서 몇 번이나 크기를 수정해도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내가 그려서 만드는 것 보단 잘 그린 그림이겠다 싶습니다. (: Blog.haidigim.com에도 게시했습니다.

한 장을 고르기 위해서 낭비된 그림 열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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