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픔은 어디에나 4) 채우기 위해 비우기

보람중독 & 과부하

by 하이디김

이 글은 2024년 처음 썼던 글 「나를 구하려 쓰기 시작한 기록 4」을 바탕으로 다시 씁니다. 그때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말들로,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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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성취감을 쫓아다녔다.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고 왜 그렇게까지 보람을 찾겠다며 긴 시간 헤매고 다녔는지.


고등학교까지는 평범했다. 숙제 성적 공부 친구 열심히 미션 완수하느라 뭐든 하면서 '보람'찬 시기였다.


가톨릭계 여고, 2학년부터 기숙사생이 되었다. 수녀님 사감인 기숙사 독서실 책상에서 일어난 아침이 적잖다. 공부하느라 밤새웠다? 아니다.

밤에 학교서 야자를 10시에 끝내고 돌아와서 숙제인지 뭐인지는 하느라 앉은채로 잠들면 그대로 내리 잤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룸메들에게 왜 안 깨웠냐고 힐난하는 게 일상.

'네가 무섭게 건들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깨우냐'라고 평소 순둥순둥하던 애가,

'이제 사감수녀님도 포기했다'는 둥.


그땐 그랬다.


나는 기억도 안 나는데,

잠 덜 깬 나는 방으로 가라고 깨워준 착한 친구들에게 화나 냈으니,

지금 돌아보니 웃픈 추억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가위눌린 기억이 많다.

나뿐만 아니라 몇몇 룸메들도.

귀신이라도 있었을까? 아니, 생각해 보면 수능을 앞둔 그때 함께 엄청 많은 추억을 쌓기도 했지만 학교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언덕보다 더 커다란 스트레스는 늘 우리 어깨를 누르고 있었지.



그러니까 다시 돌아와서 내 보람 중독의 역사는, 결혼과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고 중국에서도 이어진다.


남편 파견근무를 따라서 독학하던 중국어를 계속 이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이 났더랬다.

그렇게 몇 년 후,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소속감이 사라질 듯 한 미래를 보니, 내 불안감은 치솟기 시작했다.


소속감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뚜렷한 보람이나 성취도 목말랐다.

한국 유학을 앞둔 대학 1년생들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자리도 1년여 이어갔지만 모든 게 불확실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국 생활과 남편 일자리에 내 미래를 온전히 맡긴다는 게 내겐 참 쉽지 않았다.


작지만 깊은 어떤 간절함이 메워지지 않았다.

뚜렷한 목표를 상실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그때 내딸을 더 찬찬히 바라보고 안아주고 함께 사는 것에만 집중해도 충분했을 텐데...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거나 무엇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일까?


결국 그 모든 보람을 찾아다닌 지난 10년이 그렇게 엄청난 성취로 결론지어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더 이상 헛된 것은 쫓을 필요가 없다.


보람과 성취는 건강하게 지낸 오늘 하루 속에 있었다.


이 자명한 진리를 나는 긴 시간 깨닫지 못했다. 머릿속을 꽉 채운 보람중독과 과부하된 뇌가 내 눈을 멀게 했다.


빈둥거리며 아무것도 안 한 하루가 언제였더라.

내 하루는 짧다.

짧다고 느꼈다. 그래서 짧은 하루를 길게 살려면 남들도 다 한다는 '미라클 모닝'을 실천해야 하는데, 7시간보다 적게 자면 하루를 끝낼 수 없는 저질체력으로 태어났다.


하여, 나에게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보람중독과 멀티태스킹


멀티태스킹은 과연 장점일까?


직무 내용 필요조건에 백이면 백 들어가 있다.

직장인이 멀티가 되지 않으면 할 일 목록은 줄지 않는다. 효율적인 업무 수행에 필수.

악습은 일상에도 스며들었다.

밥 하면서 유튜브보기.

뛰면서 드라마 보기.

놀면서 노래 듣기.

운전하며 오디오북 듣기.


직장 탓을 버린대도, 온전히 하나에만 집중할 수 없다.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바쁜 척 사는 삶에 중독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듣다가도 집중을 못한다. 이 노래는 내 취향인가? 그럼 하트를 눌러야 하고 내 음악 서랍에 저장해야 한다.


그냥 즐기면 되는데. 이건 습관인가 타고난 건가. 여러 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노트북과 휴대폰이 우리 손에 들어온 후에 더해졌다.



과부하와 건망증


멀티태스킹이 습관화된 뇌는 과부하를 일으키고 건망증이 딸려 오기 마련. 여러 일을 한 번에 하는 버릇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짬뽕이 된다.


할 일을 놓치거나 중요한 일을 까먹기도 한다.


괴롭힘 사건 후 나에게 과부하가 왔다.

단순한 일을 처리하기 힘들었다.

북받치는 감정 처리도 버겁고 내가 꼭 해야 할 일거리들은 벅찼다.


학폭위 장학사와 몇 번의 통화를 했던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엄마인 장학사의 공감과 도움 되고픈 마음은 감사했지만 하나마나한 결정과 조치를 위해 버려진 시간들. 학교 폭력이 인정됨,

이라는 문구가 종이 한 장에 새겨지기까지...


어쨌든, 그와 동시에 실업급여를 받게 된 우연 덕분에 처음 두 달은 비워보자고 맘먹었다.


이젠 빈둥거리며 생각을 비우고 명상을 해야 하지 않나. 그렇다고, 여태껏 제대로 빈둥거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 근처에도 가질 못했다.


하루 걸러, 혹은 매일같이 딸이 좋아하는 간식을 넣어주러 병동을 다녀오기. 건강 챙기려 헬스장 출근도장. 어쩌다 지인과 만나 티타임. 그러고도 시간이 되면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 하기 아니면 웹툰까지. 매일매일 둘째 하원 전에 밥과 생존요리까지.기도와 명상을 위해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결심하기로는 넷플릭스, 유튜브프리미엄, 티빙 구독을 이번 달 말까지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유예기간만 길어진다.


까짓 거 끊어도 다시 구독하면 그만인데 구독 중지 버튼은 이리 멀기만 한가.


보람중독보다 더한 OTT중독이다.




1.딸이 고른 그림을 커버 사진으로 썼다.

Sora 프롬프트:

based on my favorites and my media, please make one image in line with them but about sleep paralysis . the image I previously used is from pinterest. but I need my version of it and choose one but in a little more with my style. can you choose one from this four? hoping you choose less scary and make it in line with my old favorites or my media folders. I mean my previous media. I am using this for my new blog and I need your colors in it too


2. 지난달 Sora로 만든 것 가운데 내가 골랐던 그림.

같은 프롬프트로 만든 다른 예시.


3. 이번 주에 Gemini에게 글 소제주고 추천한 프롬프트로 Sora가 만든 그림. 제목만 알려줘서 그런지 글과 그림이 따로 노는 국밥이다.

Sora 에서 무료로 그려 주는 이미지 개수를 한 달 전 보다 훨씬 줄였음을 알게 되었다.

프롬프트:based on my previous image, you should create this image in line with the previous one but not too dark. : A minimalist composition featuring a clear, empty glass or bowl being gently filled with pure, shimmering water. Around it, various fragmented or cluttered objects (representing burdens, stress, old thoughts) are subtly fading or dissolving. The focus is on the act of purification and renewal. Soft, clean light, high contrast, symbolic, tranquil, minim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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