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 나는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 글은 2023년 처음 썼던 글 「나를 구하려 쓰기 시작한 기록 3」을 바탕으로 다시 씁니다. 그때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말들로,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춘기 초입의 딸에게 남편이 '질풍노도는 무슨 너덜이구만'라고 했다.
딸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나는 질풍너덜의 시기를 건너고 있다.
고민과 번민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나를 관통한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 왜 태어났는가. 무엇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절박하게 나만이 이루어야 할 소명이 있긴 한가?
하루 살아내면 주어지는 상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무서운 담임이 내준 숙제를 해내려는 듯 일어나고 먹고 쓰고 또다시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할까.
누구를 위해서 이 삶은 이어져야 하는가.
세상은 미쳤고. 미치지 않으면 미친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것 아닌가, 이 또한 내 자격지심이 나를 괴롭히는 건가.
어떨 땐 ‘당신이 옳다’했으니 늘 내가 다 옳다고 소리지르고 싶다가도, 아니, 내가 너무 예민한가?
왜 난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받아 들일 수 없는가? 늘 많은 것을 느끼고 또 그로인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반복할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딸이 전화를 걸어 왔다.
심장이 조이는 듯 아프다. 기침이 끊이지 않는다, 배도 아프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상주 할 수 없나.
엄마와 일반 병동에서 있게 해 주세요라고......
공중전화에 동전 내려가는 소리 그 얘기에 속상한 내 마음이 덜컥 땅으로 꺼지는 소리같다.
왜 의사는 치료해 주지 않는거야? 엄마, 집에서 간호해 줄 수 없어?
딸아,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야. 많이 힘든가 보다 푹 쉬어.
딸깍 끊는다.
그 땐 몰랐다. 전화를 끊고 나니 선명해졌다.
그래, 온몸으로 표현하는구나. 네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기가 생떼 쓰고 고집 부릴 때와 같다.
떼굴떼굴 구르며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퇴행한 딸의 멘탈은 아직 사춘기 초입의 제 나이로 돌아 오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주치의의 설명은 늘 지나고 나서야 이해가 간다. 너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
먹고 싶다는 떡볶이와 김밥을 플라스틱 통에 넣어주었다. 친절한 병동 간호사 덕분에 문 넘어 멀리서 빠빠이라도 허락받았다. 그 사이에 딸에게 외쳤다.
네가 엄마 보고 싶어서 그랬네. 엄마 자주 올게.
그리고 걸려 온 전화는 어땠더라. 네 목소리도 나아졌지만,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너는 어린이와 청소년 그 어중간한 곳에서 아직도 내게로 오고 있다.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는 몸과 마음이 아직 하나가 되지 못한 그 어정쩡한 걸음을 성큼성큼 걸어 오고 있다.
그날 밤 하원한 둘째와 열심히 버스 그림 퍼즐을 맞추다 마지막 한 조각을 찾지 못 했다.
딱 한 조각 때문에 속상해 참을 수가 없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다.
결국, 다음 날 아침, 퍼즐 조각을 찾았다. 바로 우리가 맞추던 퍼즐 아래에 있었다.
사실 그 조각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퍼즐 아래를 뒤져 볼 엄두를 못냈던 것 뿐이다.
퍼즐이 흩어져 버릴까 두려웠던 거다.
너도 거기에 있다.
세상과 차단되어 시간만 가득한 곳. 그곳에서 네 모든 기억과 사실과 생각을 마주하고 헤집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처절할까. 그 작은 머리와 가슴이 버텨내는 것은.
열 네 살의 너로 우리에게 다시 오기까지 시간이 다만 더디게 갈 뿐이다.
우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등대가 바다를, 파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내 일’이다.
김연수 작가님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책장에서 꺼내어 읽어야지.
너를 향한 내 사랑의 깊이와 그 시간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나의 표현과 어휘들만 탓한다.
내딸, 나는 네 맘 속에 그대로 있어. 항상 널 생각하고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네가 좋아질까, 지금 나와 지낼 수 있을까.
웃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내가 뭘 더 해야 했을까.
내 사랑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표현하는 것.
내가 해야 했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 뿐이다.
지금이라도. 늦더라도.
매일매일 갈게. 내일은 갈비천왕을 사 갈 거다. 지난 밤 네가 좋아하는 빵또아 쿠앤크 한 팩을 로켓 배송시켰다. 바로 집에 왔다. 정말 행복하다. 네가 환하게 웃을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보고 싶다. 참아야 한다. 더 건강해질 너를 믿으니까. 난 기다릴 수 있다.
너와 소소한 일상이 내 가장 큰 행복이었다. 많은 걸 바란 적 없었는데.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늘 바랐었구나. 긴 시간들 부질없는 내 바램들이 가득하다.
모두가 다 아는 진리를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되나.
올해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우리 따로 지내야 할까?,
아니 난 이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을 거야. 네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그렇고 그런 하루일 뿐이다.
대신 우리는 네 퇴원하는 날 엄청 신나고 재미있는 파티를 열거야.
너를 아끼는 일곱 친구를 한데 모아 마라탕도 먹고 방탈출도 하자.
엄마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너와 함께 할 계획만 잔뜩 세울 거야.
너는 그냥 웃으며 오면 돼.
Blog.haidigim.com와 브런치북에 게시합니다.
제 손으로 다시 쓰면서 그때 기억에 먹먹해집니다.
그 막막했던 시간은 여전히 가슴 한 켠에 아로 새겨져 완전하게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완치하지 못 한 아픔들은 지금을 더 소중하게 살 게 할 힘을 줍니다.
다시 쓰는 과정에서 ChatGPT가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프롬프트를 써 주었고 Sora에서 만든 이미지를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