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픔은 어디에나 있다. 2) 혼자이긴 싫어

엮이긴 싫지만 연결되고 싶음

by 하이디김

기분전환 겸 서울의 봄?

아라레언니와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에서 서울의 봄'을 골랐다.


상영관이 늦은 밤에 가득 찼다.


다음 날 아침, 간만에 간 건식 사우나 안에서 낯 모르는 이들끼리 서로 '서울의 봄'봤냐고 하던 걸,


전두환이 어쩌고 저쩌니 하는 그 열기와 나는 거리를 두고 살았구나. 보고 나면 분노 게이지 상승이라기에 기대가 적잖았다.


그리고 잘 만든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감사했다. 너무 꽉 찬 내 머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아서 멀리서 세상과 나를 둘러싼 사회에 눈을 돌리게 해주는 영화는 단비였다.





따르릉 소리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이 영화는 지금의 인터넷으로 연결된 우리 세상과 뭐가 다른가.


전화, 감청과 불통, 그리고 지연 또는 학연, 혈연을 이용한 공작이 난무한다.


실시간 댓글과 댓글부대 또는 리뷰와 가짜 리뷰와 동행하는 지금과 다른 게 있나?


악한 편은 선명하게 전략적이고 무식하게 권력 지향적이다.


반대 편은 한 몸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고 전략은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누군가는

대세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속삭임에 혹한다.


죽어서 한국에 누울 자리를 거부당한 전두환이 이끌던 하나회는 이름만 사라진 것 같다.


기세등등한 검찰, 레거시 미디어. 소위 기득권이지만 친일이 기저에 깔린 권력을 영원히 등에 업은 이들이 형형하게 살아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연결의 본질은?


영화 스포는 자제하려 하지만, 쓰다 보니 끝이 없다. 좋은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이 계속 떠오르게 하니까 내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보고 기억한 느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맨 처음에는 '하나회도 거기서 거기, 사람 사는 게 또 비슷하구나'했다.


아니다 더했다구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들과 사다리를 오르고 싶은 이들의 심리를 조종하고 결국에는 한 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뒤흔들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뿌리부터 썩은 이가 힘을 쥐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 멀리 전두환 시대까지 갈 일도 아니다.


상영 중인 영화 가운데에서 감정이입이 안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극우유튜버 때문에 학교 단체 관람이 취소된다는 촌극 같은 뉴스 헤드라인을 보자 더 많은 사람과 보고 싶었다.


엄마 아빠 영화 데이트 하시라고 바로 예매를 해 드렸다.


고르지 못한 영화들 중에 송강호가 추천한 일본 영화 '괴물'은 내딸이 처한 상황 때문에 그나마 잠궈놓은 수도꼭지를 틀게 될까봐 싫었다.


그리고 김해숙이 열연한 '3일의 휴가'는 엄마라는 정체성 때문에 눈물을 참기 싫었다.


어렵게 고른 영화가 '서울의 봄'이었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려고 애쓰는 지금, 가진 게 없는 입장인지라 어째 더 감정이 이입되고 말았다.



그래도 픽션은 진짜 이야기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직접 겪은 상황을 세세히 기억해 잘만 표현한다면 시트콤 한 시리즈 정도는 거뜬하게 만들 텐데.


장르가 어중간해서 흡입력 있는 전개는 부족하고 통쾌한 엔딩도 결코 없다.

진짜 삶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없으니까.

계속 버티어야 다음이 있다.




SNS 시대의 외로움, 그리고 치유


나는 굳이, 시간을 내어, 친구나 남의 인스타 피드와 카톡 프사를 기웃거리고 그 단편적인 모습을

궁금해한다.


SNS 피드를 몇 초만에 훑어보고 그네들의 삶을 다 알아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로 몇 초만에 인사를 주고받고 몇 달 치 대화를 다 나눈 듯 하다.


남을 흘끗거리며 나랑 비교해 보고 그만한 하루를 살았거나 비슷하면 안도한다. 혹은 자격지심을 삼키며 이를 상쇄할 다른 경험과 물건을 찾아 내 SNS와 카톡 프사를 꾸미곤 한다.


세상 어디든 실시간 소통에 편리함에 가려진 참으로 연결됨.


전화선이 이어주던 친구가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경험은 어디로 갔나?


인터넷은 인간에게서 그리움을 앗아갔고

누구든 당장 닿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게 했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주지 않는 대상에 대한 원망을 키웠다.


사회적 동물. 편지, 전화선 그리고 인터넷까지 기술이 허락하는 만큼 우리는 연결하기를 원한다.


혼자는 싫다.


남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우리는 다른 것에 감명을 받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내가 느끼는 바는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서인가, 불편하지만 계속해서 관계 맺기를 열망하고 또 이 속에서 상처를 찾거나 주고받고 치유하며 성장한다.


그러므로 내딸도 치유될 것이다.

시간은 내 편이니까.


치유와 극복의 이야기가 열 번 째에서 끝이 날지, 혹은 천일동안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지는 써 봐야 알겠지.


Blog.haidigim.com와 브런치북에 게시합니다.

제 손으로 다시 썼습니다.

다시 쓰는 과정에서 ChatGPT가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프롬프트를 써 주었고 Sora에서 만든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최종 이미지를 고르기까지 낭비한 열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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