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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ug 22. 2019

[휴직일기] 여행을 통해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있었다

아빠의 든든한 조력자, 두 아들

밴프 캠핑장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다음 일정도 있었는데 할일이 너무 많았다. 짐도 챙겨야 했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정신이 없었다. 오두막 안에서 짐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는 바빠 죽겠는데,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자니 뭔가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자기들끼리 신났구먼, 도움도 안되는 아들놈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바쁘게 짐을 싸느라 제 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내뱉고 나니 갑자기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미친 거 아닌가 싶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 건가? 아이들이 여행 중에 잘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말이다. 저렇게 신나게 즐기는 아이들을 탓한 내가 바보같았다.


그리고 내가 순간 망각한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잘 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엄마 없는 여행에서 아이들은 줄곧 아빠의 양 팔이 되어 끊임없이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여행 순간 순간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을 까먹고 말았었다. 미친게지....


아빠답지 못한, 보호자 답지 못한 나의 중얼거림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여행에서의 활약상을 정리해봤다. 사죄의 마음을 담아서.


화장실은 알아서 찾아가기!


여행 중 아이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받았을 때는 언제였을까? 단연코 가장 큰 감동의 순간은, 아이스 필드 설상차 체험 후 마트에서의 일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설상차 체험은 밴프에서 두 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진행됐다. 게다가 우리는 예약을 제대로 안하고 간 탓에 5시가 넘어서 체험을 마쳤고, 밴프에 여덟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해가 길어 10시까지 환한 밴프였지만 캠핑장에 가서 짐을 정리하고 밥을 먹기에 꽤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밴프에서의 마지막 밤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고 싶었다. 나름 의미있는 저녁이었으니까.


아이들과 늦은 저녁을 먹기로 의기투합하고, 마트로 갔다. 마트에 도착할 때쯤 아이들과 빛의 속도로 장을 보기로 다짐을 했다. 때마침 저녁에 불을 피울 라이터도 없던 상황이었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빠는 소고기를 살 테니, 너희들은 라이터를 찾아서 갖고 와"


마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이들과 나는 신나게 마트로 뛰어갔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은 각각 소고기와 라이터를 손에 들고 계산대 근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물어가며 라이터를 찾았다. 계산을 하는 사이 자기들끼리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했다. 화장실이 급한 아이들에게 맘이 급한 나머지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고 오라고 했더니 정말 둘이서 척척 해결하고 돌아왔다.

 

말도 안통하는 타지에서 아이들은 씩씩하게 아빠가 내려준 미션을 잘 해결했다. 아빠가 나쁜건지, 아이들이 착한건지 어찌됐든 아이들은 아빠가 내려준 무리한 미션을 잘 수행했다.



큰 아들은 불담당, 둘째 아들은 설거지 담당


캠핑은 나에게 너무나 큰 도전이었다.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캠핑을 해 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 내게 밴프에서의 도전이 버거운 건 사실이었다. 텐트까지 치라고 했다면 아마 못했을 거다. 텐트라도 주는 캠핑이었기에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캠핑장에서 나는 꽤 바빴다. 식사 준비도 해야 했고, 아이들과 추억이 될 캠핑파이어를 위해 불을 피우기도 해야 했다. 호텔에서의 편한 휴식은 아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어찌 이걸 다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 덕분에 그걸 다 해낼 수 있었다.


캠핑장 첫날, 불을 피우는 게 쉽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나무에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불 피우려다가 밥도 못할 판이었다. 대충 불씨를 만든 다음, 큰 아들에게 불담당을 맡겼다. 아이에게 불을 살려보라고 했다. 아빠도 못한 것을, 아들은 종이로 부채를 만들고, 주변의 나무 가지를 모아 신나게 불을 피웠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 마칠 때쯤 불은 활활 피워 올랐다. 피워 오르는 불 옆에 선 아들은 그야말로 땀 범벅이었다. 불담당으로서 미션을 잘 수행해줬다. 본인 스스로도 감탄하는 듯 했다.


"포기 하지 않고, 불을 피울 수 있어 좋다"


아들은 그렇게 불을 피우면서 끈기있는 삶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7살 아들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설거지 담당을 자처한 둘째는 열심히 냄비와 식기를 씻었다. 설거지 장소와 텐트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두 곳을 오가며 식기를 나르기도 했다. 형이 불을 피울 때 옆에서 나무가지를 주워와 가져 오기도 했다. 자기 몫을 다 해 뿌듯해 하는 둘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캠핑장에서의 이틀이 너무 소중했다. 아이들이 너무 멋졌다.그런 아이들에게 도움도 안된다고 생각하다니, 나는 혼나야 하는 아빠다.


힘도 제법 쓸 줄 아는 아이들


레이크 루이스에서는 힘으로 나를 도와줬다. 카누를 끌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큰 힘이 되었다. 맨 처음엔 노젓는 방법을 몰라 낑낑대던 아이들은 노가 몸에 익은 후부터는 신나게 노를 저었다. 덕분에 우리는 레이크 루이스의 멋진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고!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둘째도 알고보니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둘째가 힘들다며 노 젓는 걸 잠시 멈췄을 때 우리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둘째가 노젓는 것을 멈추고 나서 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힘은 약했지만 나와 큰 아들 사이에서 둘째의 노젓기는 교묘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었던 것이었다. 듬직한 녀석들이다.


문득 몇 년 후, 아들들이 지금보다 더 컸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땐 어쩌면 아들들이 밀어주는 보트에서 편하게 뒷짐 지고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무리한 생각인가? 어찌됐든 아들과 함께 한 보트에서 아이들이 진정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을 하면 할 수록 여행력이 길러진다.


"아이와 함께 배낭여행을 하면 아이의 성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습니다.“ 


김민식 피디님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에 나온 이야기다. 캐나다에 오기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과의 여행을 혼자 그려보기도 했었다. 김 피디님의 여행에서처럼 나 또한 아이들의 성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간 여행은 확실히 아내와 함께 한 여행보다 아이들의 성장이 눈에 더 도드라졌다. 혼자 독점적으로 아이들을 봐야 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아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하나씩 나에게 도움을 줄 때마다, 나는 아이들이 이만큼 커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는 말한다. 아이들에게 여행을 시켜줘봤자, 기억도 못한다고. 굳이 어릴 때 여행을 많이 다닐 필요 없다고. 일견 동의하는 내용도 있다. 아이들이 여행을 까먹는 것은 이미 여러 번 경험한 터이다. 하지만 여행은, 비록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알게 모르게 자라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처음 여행할 때와 달리 아이들 스스로도 여행력이 길러져서 아빠의 심부름도 잘 하고, 알아서 이것 저것 챙기기도 하니 말이다. 


나 또한 그 이야기에 동의한다. 아이들은 이미 하나둘씩 여행을 잊어버리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아이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을 잘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이 기억을 못하는 아이들과의 여행이 좋다. 오롯이 아이들을 느낄 수 있어 좋고, 아이들은 덕분에 더 클 수 있고 말이다.


이번 여행을 기억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한뼘 자랐으니 그걸로 됐다. 점점 나의 동반자가 되어가는 아이들 덕분에 나 또한 너무나 즐거운 여행이었다. 감사하고 아무 쓸모 없다고 생각해서 미안했다. 또 다른 여행을 기획해보자꾸나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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