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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Sep 24. 2019

쉬는 게 무엇인지 배워가는 중입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하여.

어떻게 쉬는 게 제대로 쉬는 걸까요? 


 리뷰빙자리뷰라는 모임이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이 모임은 발표자에게도 청중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발표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공유함으로써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청중 또한 개인의 "사소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통해 삶의 조그만 파장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 또한 이 모임을 통해 남들을 바라보고, 또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몇 번 참석하진 못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리뷰빙자리뷰 모임에 참석했다. 이날은 조금 특별한 모임이었다. 시즌2를 마무리하며 무려 10명의 리뷰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나 또한 그날 소소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연초에 만들었던 버킷리스트 100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준비를 하면서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지금 휴직을 하고, 매일을 살아가는데 버킷리스트 100개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발표를 준비하며 정리할 수 있었다. (이날의 발표는 다음에 따로 글로 정리해 볼 예정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9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에게 작든 크든 상처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만의 상처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치유하고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었다. 10개의 리뷰만큼이나 풍성한 시간이었다.


 9개의 발표 중에 유독 나의 관심을 끄는 발표가 하나 있었다. 휴가도 거의 쓰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하다가, 갑자기 닥친 번아웃으로 인해 사표를 쓰고 발리 우붓으로 가서 요가 수업을 들었다는 리뷰어의 발표가 바로 그것이었다. 우붓에 가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그녀의 발표는 나로 하여금 우붓에서 요가를 해보고 싶은 욕망을 샘솟게 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 발표가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발표자는 열심히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버렸기에, 우붓에 가서도 열심히 요가 수업을 듣고, 요가 수련을 했다고 한다. 꽉꽉 찬 스케쥴과 열심히 필기한 수첩이 이를 잘 보여줬다. 쉬기 위해서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도 그녀는 열심히 살아가는 고질병을 고치지 못했던 듯 했다.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나 뭐라도 해야 불안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그녀의 발표 중에 보였다. 하지만 발표 중에 어떻게 쉬는 것이 제대로 쉬는 것인지 잘 몰라서 자기도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그녀만의 쉼의 방법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문득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쉼도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휴직은 했지만 쉬는 것을 잘 모릅니다.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우붓에서 요가를 열심히 배우던 그 발표자가 생각났다. 책의 저자 또한 발표자와 비슷했다. 쉼표를 찍기 위해 휴직을 선택했지만 작가 또한 열심히 살아가는데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적당히 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듯 싶었다. 쉬는 것보다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사는 것의 기저에는 미래의 행복이란 게 깔려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인생을 살아온 방식은 그랬다. 행복은 항상 멀리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며 행복은 그 어디쯤 있겠거니 생각했다. 일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일이 없으면 무료함과 권태를 느꼈다. 항상 목표를 세워 미래에 방점을 찍고, 이러이러한 것을 이루면 행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현실을 견뎠다." (오늘부로 휴직합니다. p.98)


 나 또한 비슷했다. 언제나 현실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살아야 미래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잡힐듯 잡하지 않는 미래 때문에 항상 현재는 희생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3년만 열심히 공부하면 인생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취직하기 위해 아둥바둥 지내야 했다. 취직을 해서도 진급을 위해 노력해야 했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애면글면 돈을 모아야 했다. 언제나 지금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행복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배워왔다.


 그렇기에 휴직이라는 것이 단순히 쉼으로만 다가오기 어려웠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내가 쉬는 기간동안 열심히 지내지 않으면, 이 시간이 헛된 것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수시로 나를 엄습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부로 일년간 휴직을 합니다>에서 느꼈던 작가의 압박감이 나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뭔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뭔가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찾아왔다" (p.100)
"이젠 더이상 서두를 일이 없는데도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는 그리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습관을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p.125)

 

 다행히 작가는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또 요리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압박을 극복할 수 있었다. 비록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열심히" 걸어야만 했지만 나름의 쉼의 방식을 만들어 냈고, 이를 통해 복직을 하면서 회사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은 바꿀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을 이기고 내가 나에게 1년이나 쉴 기회를 줘 봤다는 것이 나에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작은 자랑이다. 이제 다시 일요일 밤마다 월요일이 두려워 한숨을 쉬는 평범한 직장인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곳에서 또 다른 나만의 이야기를 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p.268)



너무 애쓰지는 말자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쉬는 게 잘 쉬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파에 누워서 티비 리모콘만 주구장창 눌러대는 게 쉼은 아닌 듯 싶었다. 늘어지게 자는 것도 하루 이틀이면 족했다.


 문득 쉼과 관련해 지인이 나에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마음의 여유를 가져"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기 쉽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몸은 아둥바둥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은 나를 기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다행히 캐나다에서 두 달 넘게 있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나에게 1번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러다보니 휴직 후 만들었던 나만의 루틴들이 무너져 버렸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던 습관을 지켜내지 못했다. 하루라도 습관을 지키지 못하면 내게 큰 문제가 생길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서울에 와서 다시 루틴을 만들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매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리고 하루를 거른다고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너무 애쓰지 않고 살아가려고 한다. 나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이야기 해줄 수 있는 틈새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런 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있어 쉼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게 나만의 쉼의 방식일 것이고.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라는 책을 보고 사실 많이 놀랐다. 내가 책을 내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을 뺏긴 것 같아 내심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나답게 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휴직 기간동안 어떻게 보내야 할 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지만 삶에 있어서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된 것도 같다. 


먼저 써줘서 오히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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