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한 남자 후배가 하나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시간을 내기 어려워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연락도 하며, 함께 점심도 먹곤 한다. 후배는 휴직 후에 인간관계에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고 종종 토로했다.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 친구 어머니들과 함께 하기에는 서로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가끔 나를 만나고, 또 다른 휴직 동기 한 명을 만나는 게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가끔씩 “외로움”이 밀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좋든 싫든 매일 매일 사람들과 만난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물론 갈등 상황에서 주는 피로감도 무시못하지만, 대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사회에 소속되었다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휴직 기간동안에 이런 감정을 잊어버리기 쉽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휴직 기간에 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회사 사람도 간혹 만나지만 회사 밖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난다. 주로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간 사이를 활용한다. 낮에 생각보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휴직하고 나서야 알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았다. 정 안되면 점심시간을 활용해도 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건 “들이댐”덕분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한 번 보자는 말을 많이 했다. 그냥 보자고 하면 유야무야 넘어가기 일쑤인지라, 만남을 기약하면 곧장 날짜를 잡곤 했었다. 날짜를 잡지 않으면 만나잔 이야기는 그냥 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이댔던 것은 휴직기간 동안 내가 좀 더 변하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로만 살아왔던 나를 반성하며 나의 틀을 깨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들이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글쓰기였다. 나는 꾸준히 글을 썼다. 100%라고 할 순 없지만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의 글을 좋게 평가해주셨다.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들은 대부분 나의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보신 분들이셨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내 감정을 잘 표현하다보니 호응을 얻게 된 듯 싶었다.
더 신기한 일도 있었다. 휴직한 지 5개월이 넘어가다보니 내가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되기도 했다. 나의 글을 보고 휴직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이게 꼭 긍정적이라고 판단은 못하겠지만)그들에게 내가 해줄 말이 생겼다. 물론 내가 하는 이야기가 별볼일 없는 것일지 몰라도 휴직선배로서 휴직 기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는 사람으로서 해줄 말이 생긴 건 좋은 현상인 듯 싶었다.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을 정리하는 것이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별거 아닌 사람이지만 말이다.
얼마전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중>
사람들을 만나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그들의 과거의 경험을 얻었고, 현재를 사는 지혜를 구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문을 갖게 했다. 그렇게 나는 글과 들이댐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휴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