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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밴프에서 캠핑하다

특별한 경험과 그 속에서 새로웠던 아이들

by 최호진

밴프에서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며 나는 연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웅장한 자연 속에 겸손해지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들도 이곳을 즐겼다. 먼 거리 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에너자이저였다. 우리는 이틀 밤을 캠핑장에서 자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경험하지 않았던 캠핑이었기에 힘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도 마주하기도 했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별한 경험, 캠핑을 준비하다


캐나다에서 밴프로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이 숙소였다. 하지만 마음에 맞는 호텔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성수기 밴프의 호텔 요금은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호텔 상태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다. 늦게 알아본 것이 문제였다. 8월초 극성수기에 여행을 하겠다고 하면서 5월말부터 알아보니 좋은 호텔이 남아 있을리가 없었다.

그 때 눈을 돌린 게 캠핑이었다. 누나로부터 캐나다에 oTENTiks라는 특별한 캠핑장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텐트와 오두막이 합쳐진 형태의 이곳은 침대도 있고, 별도의 난방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별도로 텐트 등의 캠핑 장비가 필요 없었다. 이불과 간단한 조리도구만 준비해 오면 되는 수준이었다. 나같이 캠핑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밴프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딱이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다. 국립공원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밴프의 oTENTiks는 120 캐나다 달러로 예약이 가능했다. 10만원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https://www.pc.gc.ca/en/voyage-travel/hebergement-accommodation/otentik


oTENTiks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곧장 캐나다 국립공원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했다. 하지만 내가 알아본 시기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우리 삼부자를 위한 공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때를 놓친 것을 후회할 뿐이었다. 8월초 여행을 준비하면서 5월이 끝날 때쯤 여행을 알아본 나를 탓할수 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다른 사람들은 6개월 이전부터, 빠르게는 캠핑장 예약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이곳을 예약한다고 한다. 취소 수수료(22달러)도 그렇게 비싸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지르고 본단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텐트만 빌려주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quipped Campsite라 불리는 곳이었는데, 텐트 뿐만 아니라 가스 시설도 빌려주기 때문에 요리도 가능한 구조였다. 텐트냐 오두막이냐의 차이지 oTENTiks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예약을 진행했다. 우리를 위한 텐트가 다행히도 남아 있었고.

밴프의 여름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예약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텐데, 무지했기에 오히려 용기를 갖고 예약할 수 있었다. 여름이라 텐트에서 자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냐는 생각이었다. 참고로 가격은 예약 수수료 포함해서 캐나다 달러로 81달러였다.


우연히, 내눈앞에 나타난


레이크루이스에 가고 싶어 선택한 밴프여행였지만, 나는 여행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준비의 가장 기본인 밴프에 대한 공부도 제대로 안했다. 캐나다에 올 때는 캐나다 가서 해야지라고 미뤘고, 캐나다에 오고 나서는 아이의 맹장 수술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모두 다 핑계였지만 말이다.

공부를 안했기에 밴프가 얼마나 크고 볼 것이 많은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가서 몸으로 부딪히면 되겠거니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이틀밤만 자고 오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밴프 호텔에서 1박, 텐트에서 1박을 예약한 게 전부였다.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자동차로 가서 이틀만 자고 온다고 생각했으니...

이런 일정에 대해 위니펙에서 만난 캐나다 친구 Ryan은 우려를 나타냈다. 밴프에 그렇게 힘들게 가서 너무 짧게 돌아온다는 지적이었다. 그의 충고를 듣고 부랴부랴 밴프에서 하룻밤을 더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짧은 일정이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게 최선인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부랴부랴 숙소를 알아봤다. 하지만 여행이 임박한 시점에 제대로 된 숙소가 나올리 만무했다.

아무 생각없이 캐나다 국립공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서였다. 기대없이 들어갔는데 그렇게 가고 싶던 oTENTiks, 그것도 우리가 예약하려는 날에 자리 하나가 남아 있는 보였다. 아마도 누군가가 예약한 자리를 취소한 듯 싶었다. 흥분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예약을 진행했다. 그 사이 다른 누군가가 예약을 하면 안되었기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운명처럼 하늘에서 oTENTik 선물이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이틀 동안 캠핑장에서 지내야 했기에 그냥 여행을 하는 것보다 짐은 많아졌다. 출발할 때쯤 밴프의 아침 기온이 영하로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왜 텐트를 예약했을까 후회도 잠깐 했지만) 부랴 부랴 두꺼운 침낭을 준비하기도 했고, 냄비 등의 조리도구와 각종 음식들(주로 라면)을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밴프에서의 캠핑이 너무 기대됐다. 한국에서는 죽어도 가기 싫다던 캠핑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캠핑은 뭔가 특별할 것 같았다.



캠핑초보 아빠 그리고 나의 조력자들


밴프 시내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 다음날 오후, 우리는 밴프에서의 첫번째 캠핑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Two Jack Main 캠핑장이었다. 캠핑장 입구에서 간단하게 체크인을 마친 우리는 담당자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우리의 텐트로 갈 수 있었다. 담당자의 설명 중 음식물 보관에 대한 설명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먹은 음식물은 꼭 차 트렁크 안이나, 텐트 옆에 마련된 별도의 철제 박스에 넣어야 된다고 담당자는 알려줬다. 그냥 놔두면 곰이 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음식냄새를 맡고 곰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 신기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쫄보"가 되어 조심스레 텐트로 갔다. 곰이 당장 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텐트에 도착한 우리는 텐트도 둘러보고, 캠핑장 주변도 둘러본 후 곧장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메뉴는 짜파게티와 밥이었다. 간단한 메뉴였지만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캠핑장에 있는 버너에 가스를 연결해서 불을 붙여야 했는데 캠핑 초짜인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결국 옆 텐트에 있는 분들에게 부탁해서 겨우 조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밥을 짓는 것도 문제였다. 처음으로 해보는 냄비밥이었다. 뜸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들이는 건지, 얼마나 들여야 하는 건지 알 지 못했다. 모든 것을 감에 의지해서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는, 삼층밥이었다. 다시 물을 붓고 끓이는 심폐소생술을 거듭한 끝에 겨우 아이들이 먹을 수 있을만큼의 밥을 만들 수 있었다. 아빠의 가상한 노력을 알았는지 아이들은 열심히 그리고 맛있게 저녁을 먹어줬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난생처음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 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이 내 배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잘 먹어주는 아이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녁을 먹고 빠르게 캠프파이어를 준비했다. 텐트 옆에 나무가 마련되어 있어 불만 붙이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닥불을 피우는 또한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자 시련이었다. 아무리 불을 붙이고 부채질을 해도 불이 살아나질 않았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짐도 챙겨야 하는데 마음만 급할 뿐이었다. 그 때 큰아들이 나섰다. 자기가 해보겠다고 했다. 차 안에 있는 종이를 끌어 모아 불을 붙이고 아들에게 불을 살려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먹었던 것을 정리해서 설거지를 하러 갔다. 이때는 둘째가 팔을 걷고 나섰다. 일곱살 둘째는 야무지게 설거지를 했고 텐트로 왔다 갔다 하며 식기를 옮겼다. 덕분에 빨리 설거지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텐트에 도착했는데, 큰 아들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들은 신이 나서 웃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며 아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들은 결국 나무에 불을 붙이는데 성공을 한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준 불씨에 열심히 부채질 하고, 종이와 나뭇가지를 넣으며 통나무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신나게 마시멜로도 구워먹고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뿌듯해 하던 아이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포기 하지 않고, 불을 피울 수 있어 좋다"


아이는 아빠도 못한 불을 피우고 엄청난 성취감을 얻은 듯 했다. 내가 부족했던 게 아이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나는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캠핑장에서 아이들이 달리 보였다.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아빠여서 미안했는데 아이들이 척척 도와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불을 붙여준, 설거지를 도와준 두 아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분명 나는 수월하게 밥도 하고, 모닥불에 불도 붙였을 것이다. 아내가 옆에서 도와주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없는 여행이라 조금은 힘들긴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리고 욕심쟁이 아빠는 혼자 그런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좋았다.


밴프 국립공원에서는 11시까지만 불을 피울 수 있었다. 11시 전에 불을 정리하고 음식물을 차 트렁크와 철제 박스에 넣은 우리는 텐트에 가서 누웠다. 조금 춥기는 했지만 그래도 침낭이 있었기에 그럭저럭 잘만했다. 불을 붙이느라 피곤했는지 큰 아이가 먼저 잠이 들었다. 잠이 들지 않은 둘째를 화장실에 바래다주면서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다. 숲속에 있는 캠핑장이라 별을 잘 볼 수 없었지만 나무들 사이사이 있는 별들을 보며 아이는 신기해 했다. 그런 아이의 손을 잡았다. 지금 순간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캐나다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혼자해보는, 아니 아이들과 함께 해보는 캠핑이 주는 행복에 취하는 같았다. 다음날도 기대됐다. oTENTiks에서의 아이들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나에게 보여줄 지 그것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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