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온지 석 달이 지났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책이 처음 나왔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책이 서점 매대에 깔리고, 하나 둘 사람들이 책을 사가지고 가는 게 신기했다. 사람들이 써준 서평을 읽으며 내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해 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덕분에 몇 주간 참 행복했다. 그리고 출간일기를 쓰는 요즘 그 때의 행복한 감정을 다시 끌어 올릴 수 있어 다시 행복하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난 날을 복기하다보니 또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솟아 오른다.
지난 글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나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 쉽게 책을 낼 수 있었다. 출판사와 작업하는 시간동안 배운 것도 많았고, 내 글이 점점 좋아지는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별다른 갈등도 없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주변 작가들 중에서는 출판사와의 미묘한 신경전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다. 물론 출판사가 나를 잘 배려해 준 게 컸지만, 그 과정에서 나 또한 출판사와 합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출판사와 협의할 때 초보 작가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간략히 설명해 보려 한다. 나의 경우 출판사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를 잘 지켰기에 큰 탈 없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1. 출판사의 입장을 무조건 받아들여라
내가 세운 가장 큰 원칙은 출판사 입장을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이미 계약을 하기 전 나와 출판사는 몇 번의 온라인, 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상태였다. 출판사에서 정리한 목차에 대해서도 동의했던 터였다. 그렇게 계약을 맺었기에 출판사에서 지적하시는 것들이 내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강원국 작가님께 들었던 이야기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글쓰기 강의에서 강원국 작가님께서는 작가는 출판사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유는 하나였다. 출판사는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봐주기 때문이었다. 이미 글을 쓰면서 감정이 이입된 작가에 비해 출판사는 객관적으로 글을 봐주기 때문에 개선점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오랜 시간 책을 내는 일을 했던 출판사가 초보 작가의 눈보다 훨씬 예리한 것도 사실이었고.
실제로 출판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야기를 고쳐 나가면 정말 글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문가의 시선은 확실히 탁월했다.
2. 중요한 협의는 오프라인을 통해서
글을 고치다가 고구마 100개를 먹은듯한 답답한 느낌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잠시 방황을 했었던 것 같았다. 그 때 SOS를 친 곳은 출판사 대표님이었다.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몇 개의 수정 사항을 받아서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100개의 고구마도 싹 내려갈 수 있었다.
나는 출판사와 일을 하면서 주로 카카오톡과 이메일을 이용했다. 확실히 카카오톡이나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내용도 선명히 전달할 수 있었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게 있었다. 진짜 중요한 말을 전달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이건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진짜 중요한 미팅은 오프라인을 통해 하는 것을 지향했다. 온라인이 주지 못하는 라포(rapport), 즉 친밀한 신뢰가 오프라인을 통해 형성되는 게 느껴졌다.
3. 필요하다면 내 의견도 낼 줄 알아야 한다.
출판사의 말을 100% 따랐지만 그렇다고 내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의견을 내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에 들어간 세 개의 꼭지가 그런 경우였다.
아내의 피드백을 받고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tip을 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휴직과 관련해 몇 가지 도움이 될만한 콘텐츠를 정리했다. 이미 어느 정도의 편집이 이뤄진 상태였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했고, 정중히 출판사 대표님께 의견을 여쭈었다. 다행히 대표님은 중간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흔쾌히 내 의견을 받아 주셨다. 조금은 뒤죽박죽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대표님도 내가 쓴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를 하셨던 것 같았다.
덕분에 몇 개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추가할 수 있었고, 의외로 이 부분을 인상 깊게 읽으신 분들도 많았다. 필요하다면 그게 늦었다고 생각되는 타이밍이라도 내 의견을 꼭 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좋은 책을 위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인쇄가 되지 않은 상태라면 충분히 출판사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가 정말 원한다면 말이다. 물론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에서 의견을 주는 게 필요하겠지만.
책을 내는 과정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또한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또는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내 의견을 내는 것도 중요하고.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충분히 서로를 믿게 된다면 좋은 결과물을 얻기 훨씬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은 바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처음 책을 내는 초보 작가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