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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기] 원고를 고치는 일은 참 힘듭니다.

by 최호진

좋은 출판사와 만나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배운 것도 많았고, 내가 쓴 글이 훨씬 좋아지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읽히는 책이 되기 위해 내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도 고민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 출판사가 대형출판사이거나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곳도 아니었다. 심지어 지난 1년간 출간 실적도 없는 1인 출판사였다. 첫 책을 내는 처지에 출판사를 가릴 처지는 못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내게 최적의 출판사였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대표님 덕분이었다. 대표님은 나의 이야기에 뼛속까지 공감해 주셨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깊게 고민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출간하는 과정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 있었다. 뭐든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https://brunch.co.kr/@tham2000/242


계약이 되면 금방 책이 나올 줄 알았다.


첫 책을 준비하시는 분들 중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면 금방 책이 나온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계약을 하고 난 이후에 더 큰 산이 남아있다고 말이다. 그 큰 산은 바로 원고 수정이다. 이는 초고를 다 쓴 상태라도 유효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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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출판사에서 작가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라 하더라도, 크고 작은 수정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상업적인 책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는 이런 저런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첫 책을 내는 사람은 출판사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게 된다. 힘의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가 그간에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라서 고개가 끄덕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다 작가를 위한 이야기니까.


그렇게 출판사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내가 쓴 원고의 상당부분은 잘려 나가고 고쳐지게 된다. 문제는 그런 과정이 생각보다 작가에게는 힘든 과정이라는 점이다. 이미 쓴 원고를 고치는 것은 처음 원고를 쓰는 것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림을 다 그린 상태에서 덧칠을 해서 그림을 수정하는 과정과 비슷하달까? 전체의 흐름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내용을 살짝 바꾸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죽하면 차라리 처음부터 쓰는 게 낫겠다고 할까.


어떻게 해서든 그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야 책이 나올 수 있게 된다.


이럴 때 마감시한이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까지 고쳐야 한다는 압박이 나의 너지를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간 계약서의 마감시한이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마감시한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패널티를 물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마감시한이 허울 뿐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마감시한까지 느슨해진 상황에서 작가의 원고는 잘못하다가는 표류하는 배처럼 둥둥 떠다닐 우려 또한 크다. 이런 경우를 몇 번 보기도 했고.


출간계약을 하면 황금빛 미래가 곧장 열리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거다.


우리에게는 별도로 준비하는 게 있었으니...


다행히 우리는 원고를 수정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수정해야 할 게 별로 없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능력이 탁월해서 빨리 고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에게는 강력한 "마감"장치가 있었기에 빨리 원고를 고칠 수 있었다. 우리의 마감장치는 바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이었다.


http://www.kpipa.or.kr/info/newsView.do?board_id=1&article_id=98568&pageInfo.page=17&search_cond=&search_text=&list_no=1503


이 공모전에는 1인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부문이 따로 있어 나와 출판사 대표님은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마감이 2월 25일이었다. 1월 말에 같이 책을 써보자고 의기투합했는데 마감까지 한 달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었던 것이다. 하지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것 나도, 출판사 대표님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무리인 것도 있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 해서든 마감일에 맞춰서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한 달동안 다시 에너지를 집중해서 원고를 수정했다. 초고를 썼을 때보다 더 강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썼던 것들을 몇 번 읽어보면서 출판사 대표님이 새롭게 작성해주신 목차를 생각하며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고, 새로 쓸 건 새로 썼다. 매일같이 스터디카페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이것만 붙잡고 있었다. 마감 1주일 전에는 하루 서너시간만 자면서 원고를 고쳤다. 출판사 대표님도 마찬가지로 분주했다. 내가 쓴 것을 다시 꼼꼼이 읽어가며 윤문 작업을 함께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마감일에 맞춰 1차로 완성된 원고를 작성했고, 공모전에도 안전하게 작품을 낼 수 있었다.






강원국 작가는 마감시한이 글을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 시한을 지켜 완성해 낸다는 게 작가님의 설명이셨다. 출간에 있어 다소 애매한 마감시한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계약서 외의 더 강력한 마감시한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에너지를 집중해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작성한 것이 더 좋은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책의 원고 작업은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렇게 집중한 덕분에 우리는 5월까지의 여유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공모전 발표가 있기 전까지 책을 낼 수 없었기에 여유롭게 원고를 보면서 조금씩 수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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